[Life]고객 지갑 열게 하는 유혹의 마술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백화점 쇼핑의 과학

《‘현대본점 비디비치∼6월 15일까지 20만 원 구매시 상품권, 클렌징 티슈를 드려요∼방문해주세요∼.’

‘★미스지 신세계★ 4계절 균일 초대전

상품권 사은품 증정

▷본관 3층 행사장 6월 13∼15일’

혹시 당신은 백화점에서 보내는 이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최근 받지 않았는가.

그래서 알 수 없는 유혹의 속삭임에 이끌려 백화점에 들르지는 않았는가.

솔직히 굳이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상품권과 사은품도 챙길 겸 지갑을 열지는 않았는가.

그랬다면 당신은 백화점들의 ‘쇼핑의 과학’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다.

이달 들어 올해 첫 해외 명품 세일에 돌입한 백화점들은 구매금액에 따라 상품권을 지급하는 사은행사를 하며 고객들에게 유혹의 정보들을 발송했다.

백화점 또는 브랜드 자체적으로 휴대전화 메시지나 샘플 교환권이 든 우편 전단(DM)을 보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비 욕망과 상품의 매혹이 꿈틀대는 상업 공간, 그곳은 백화점이다.

분주한 도심에 우뚝 선 백화점은 ‘고객을 유혹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객을 분석하고 있다.

행동심리학, 좀 더 넓은 차원으로는 인간행동 연구를 주도면밀하게 진행한다. 》

● 백화점은 당신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고객관계관리(CRM)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는 고객은 1300만 명이다. 구매실적, 구매일수, 거래기간 등에 따라 고객들은 △일반 △우수 △최우수 △VIP회원 등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연간 2500만 원 이상 구매하는 이 백화점의 VIP회원은 4만 명으로 이들은 백화점으로부터 골프라운드, 오페라와 발레 등 각종 문화행사 관람권과 호텔 레스토랑 식사권 등을 정기적으로 선물 받는다. 롯데백화점 구매 1등 고객의 연간 구매금액은 10억 원 이상이니 백화점의 극진한 고객 접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됐다.

백화점 내부에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고객 구분도 이뤄진다. 바겐세일, 창립기념 행사 등 각종 백화점 행사 때 자주 쇼핑하는 고객은 ‘행사 민감 고객’으로 분류된다. 이 중 바겐세일 때마다 백화점을 이용해주는 ‘착한’ 고객은 ‘바겐세일 규칙 고객’, 명절을 앞두고 쇼핑을 많이 하는 고객에겐 ‘명절 규칙 고객’이란 이름이 붙는다. 현재의 구매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직업과 생활수준 등을 고려할 때 미래의 유망 고객으로 예상되는 ‘잠재 고객’도 있다.

당신이 백화점카드를 유유하게 긁는 순간 당신의 쇼핑 궤적은 백화점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당신이 최근 받았을지도 모르는 각종 사은행사 문자메시지들은 백화점의 철저한 고객관리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명품 세일기간 잠재고객을 백화점으로 유인하기 위해선 더 쉽게 돈을 쓸 수 있는 화장품 브랜드들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발송한다. 평소 여성스러운 정장을 자주 사는 고객에겐 그 취향에 맞는 몇몇 브랜드들의 DM을 보낸다.

안수현 롯데백화점 CRM팀 매니저는 “고객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각 백화점 행사 성격에 맞는 고객들을 그때마다 분류해 홍보하고 있다”며 “상품권 행사를 진행하면 평소보다 매출이 10% 정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20만 원 이상 구매금액에 대해 1만 원 상품권을 지급할 때 각 백화점은 사은데스크 주변 매대에 스타킹, 머플러, 양산 등 비교적 저렴한 상품들을 진열한다. 구매금액이 살짝 모자랐던 고객들은 마법에 걸린 듯 마저 지갑을 열어 20만 원을 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소비를 더 했다는 사실보다 ‘1만 원 상품권을 벌었다’는 만족감을 더 크게 느낀다.

● 백화점은 고객 심리를 측정한다

자, 이제 당신은 쇼핑하기 위해 매장에 들어섰다.

당신은 판매직원으로부터 어떤 응대를 받는가. 편안하게 물건을 둘러보고 싶은데 직원이 감시하듯 졸졸 따라다니지는 않는가. 아니면 차려입지 않은 차림새를 은근히 무시하는 시선을 느낀 적은 없는가. 하긴 일부 명품 매장의 ‘몰상식한’ 직원들은 고객이 신고 있는 구두 브랜드와 닳음 정도를 통해 고객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업계의 속설도 있기는 하다.

이 때문에 현대백화점은 각종 불만사항을 접수하는 ‘고객의 의견’ 코너를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공개해 놓았다. 고객 불만사항을 운영자에게 비공개 e메일로 보내도록 한 다른 회사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14일 이곳에 오른 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저희 어머니가 마담 브랜드 매장을 찾았을 때 일입니다. 매니저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신체적 약점을 언급하면서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양경욱 현대백화점 홍보팀 차장은 “사내 프로그램에 지점별, 팀별 고객 불만사항 접수건수가 맑음 흐림 등 기상청 아이콘으로 매일 표시된다”며 “고객들은 불만을 올리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직원들은 늘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고객 행동과 성격을 아예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각기 다른 고객 응대 기술을 판매사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이 교육 매뉴얼에 따르면 고객은 △주도형 △사교형 △안정형 △신중형 등으로 나뉜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 목소리가 크고 빠르며 자신이 원하는 본론만을 말하는 고객은 주도형이다. 이때 판매사원은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맡기며 질문에 대답할 때는 요점만 간단히 말한다. 만약 당신이 유행에 민감하며 경쾌한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교형이라면 판매사원은 제품에 대한 직접적 설명보다는 “고객님, 이 제품은 김희애가 입고 나왔던 옷입니다”와 같이 인물 위주로 설명한다. 사교형 고객의 생일과 기념일을 잘 챙겨주면 로열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현대의 박물관’에서 이뤄지는 심리게임

일찍이 달라이 라마는 “쇼핑은 20세기의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백화점들은 소비재뿐 아니라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두루 관심을 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은 2005년 본점 신관을 열면서 기존 사은행사는 축소하는 대신 문화홀에서 다양한 공연을 전개하는 문화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문화홀 이용고객의 구매금액이 일반 고객의 14배나 되기 때문이다. 백화점들의 ‘쇼핑의 과학’은 음향과 공간 인테리어 분야에도 두루 미친다. 신세계백화점은 봄에는 자연의 소리를 담은 경음악, 가을과 겨울에는 저음인 첼로곡을 매장음악으로 사용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라비언의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최근 개조 작업을 마친 현대백화점 본점 2층은 고객들이 모든 매장을 둘러보도록 주 동선을 하나만 만드는 ‘트랙형 동선’을 사용했다. 무역점과 신촌점의 가정용품 매장은 제품들을 사선으로 배치해 손님이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들어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고객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 쇼핑에 집중하도록 창문, 시계, 1층 화장실을 백화점에 두지 않는 전통의 ‘3무(無) 법칙’도 깨지는 추세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9층 가정용품 매장에선 안산, 미아점 8층 서점에선 북한산 자락이 매장 통유리를 통해 시원스럽게 보인다. 이충걸 GQ매거진 편집장은 “뭔가를 사겠다는 목표가 없는 인생은 희망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구매의 기쁨은 소유하는 순간 덧없이 사라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날로 치밀해지는 백화점들의 전략에 맞서 어떻게 똑똑하게 쇼핑할 것인가. 이젠 고객도 머리를 써야 할 때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백화점 고객 동선 조사로 본 구매법칙

나 홀로 쇼핑-시식하면 많이 산다

어쩌면 당신도 한 번쯤 미행을 당했을 수 있다. 어디서? 백화점에서다.

현대백화점 목동점은 최근 한 달 동안 식품 매장을 방문한 고객 230명의 동선(動線)을 ‘몰래’ 추적 조사했다.

고객이 매장에 진입한 시점부터 계산할 때까지의 모든 행동을 직원들이 고객으로부터 5∼10m 떨어져 살펴본 것이다. 직원들은 진열대를 지나는 고객이 어디에 멈추는지, 어느 상품을 집어 드는지를 일일이 기록하면서 관찰했다. 여기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발견됐다.

첫째, 혼자 쇼핑 온 고객이 친구나 가족 등과 함께 온 고객보다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구매 금액은 많았다. ‘나 홀로 고객’이 식품 매장에서 평균 19분 머물며 5만5000원어치를 구매하는 데 비해 동행자가 있는 고객의 평균 매장 체류시간은 17분, 구매비용은 4만8000원이었다.

둘째, 시식 제품의 판매가 높고 특히 40대 시식 고객 중 절반(50%)은 직접 맛본 음식을 구매했다. 이는 20대 시식 고객의 구매 비율 22%보다 높은 수치다. 민형동 현대백화점 사장은 “고객들에게 서빙하는 시식 음식을 아끼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평소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현대백화점 식품매장은 다른 백화점보다 ‘시식 인심’이 월등하게 후한 편이다.

셋째, 선반 진열대의 왼쪽에 있는 제품이 오른쪽에 있는 제품보다 30% 이상 잘 팔린다. 유통업체 매장의 고객 동선은 오른쪽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흐르도록 고안돼 있다. 하지만 정작 고객 앞에 가로로 놓인 진열대에선 고객들이 왼쪽에 있는 상품을 집어 들더라는 것이다. 조미료 진열대를 예로 들면 왼쪽에 배열된 제품이 오른쪽 제품보다 잘 팔리는 것이다.

민대원 현대백화점 목동점 식품팀장은 “사람의 심장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이번 조사는 그동안 막연하게 고객을 예측하고 판매자 관점에서 매장을 구성하던 관행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객을 사로잡는 쇼핑 매장의 9가지 성공 법칙▼

1. 고객은 손이 자유로울 때 구매 욕구를 느낀다

2. 동선에 맞게 배열된 상품만이 고객의 시선을 끈다

3. 고객은 시야 1m 안의 광고에만 눈길을 준다

4. 고객의 본성에 맞게 매장을 개혁하라

5. 남성의 쇼핑 콤플렉스를 해소하라

6. 여성을 붙잡는 것은 삶의 감성과 넓은 공간이다

7. 노년층의 신체 조건을 배려하라

8. 상품과 즐겁게 노는 아이를 보면 부모의 구매

욕구가 커진다

9. 오감을 제공하는 매장이 인터넷 쇼핑몰을 이긴다

자료: ‘쇼핑의 과학’, 파코 언더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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