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한옥 건물로 둘러싸인 연경당(演慶堂). 조선왕실의 풍류음악회가 열렸던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툇마루에 걸터앉거나 차일 밑 나무의자에 앉아 한국정가악연구원의 ‘도드리’, 박문규 씨의 가곡 ‘삼수대엽·우편’, 박종선 씨의 ‘아쟁 산조’의 가락을 들으며 명상에 잠긴 듯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15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왕실 음악회를 즐기는 이들의 표정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곱기도 하구나 달 아래 걸어가는 그 모습/비단 옷소매는 춤을 추듯 바람에 가벼이 날리도다.”(효명세자 작 ‘춘앵전’)
10월 30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창덕궁 연경당에서는 왕실의 풍류음악 상설공연 ‘창덕궁 연경당, 풍류음악을 그리다’가 무료로 열린다. 연경당은 1827년 효심이 가득했던 효명세자가 세도정치에 시달리는 아버지 순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사대부 집을 모방해 120여 칸의 민가 형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서 효명세자의 어머니 순원왕후의 생일 축하 진작(進爵·술잔을 올리는 의식) 행사를 비롯해 각종 정재(呈才·궁중 행사용 춤과 노래)의 공연이 열렸다.
이 궁중음악회는 판소리 민요 사물놀이 농악 등 대중적인 민속악에 치우쳤던 국악에 대한 관심이 정가(正歌)와 풍류 음악으로 옮겨지는 최근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김한석(42) 씨는 “국악이라고 하면 판소리의 ‘한(恨)’과 사물놀이의 ‘신명’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선비들이 마음을 닦기 위해 불렀던 ‘가곡(歌曲)’의 청아한 세계를 접해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에서 온 게리 알레그리니(32) 씨는 “한국의 고궁은 건물만 예쁘고 안에는 볼만한 것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비원에서 한국의 수준 높은 옛 음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이 함께 주최하는 이번 공연에는 정재국 피리, 이생강 대금, 지성자 가야금, 김정승 대금, 이준아 황숙경 김병오 조순자 가곡, 변진심 김호성의 시조, 박송희 성우향 채수정 오정숙 성창순의 판소리, 검무, 향발무, 처용무, 학무 등 국악계의 명인, 명창이 출연한다.
김용삼 문화부 전통예술과장은 “국악의 무대는 사방이 막힌 서양식 음악홀이 아니라 바람(風)이 통하고 물(流)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한옥 건물이어야 한다”며 “앞으로 안동 하회마을, 담양 소쇄원 등에도 상설 음악회를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02-733-7539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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