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보다가 짜증이 확 났다. 이거 ‘쿨(cool)’한 여성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영화라는데, 이게 무슨 쿨?
영화의 내레이션이 들려주듯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면서 마놀로블라닉 구두와 진한 사랑에 목숨을 걸면, 그게 ‘쿨’한 걸까?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씀. 요즘 ‘쿨한 여자(혹은 남자)’는? 한마디로 ‘포스트잇’ 같은 여자(혹은 남자)다. 붙어 있을 땐 찰싹 달라붙어 있지만, 떼어낼 땐 언제 붙어 있었느냐는 듯 산뜻하게 떨어지고, 또다시 다른 곳에 살포시 달라붙는 포스트잇. 반복되는 ‘접착’과 ‘분리’에 충실하면서도 언제까지나 찐득거리지 않고 초연한 자세가 바로 쿨한 태도란 얘기다.
TV 시리즈 때부터 ‘섹스 앤 더 시티’ 속 주인공인 여류 소설가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는 쿨한 여성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10년간 동거한 남자에게 “정말 결혼을 원해?”라고 묻는 캐리는 쿨한 걸까?
아니다. 남성인 내가 보는 관점에선 전혀 쿨하지 않다. 그녀는 ‘신상녀’도 못 되는, ‘된장녀’다.
신상녀(‘신상품만 찾는 여성’이란 뜻의 신조어)와 된장녀(‘명품에 중독된 사치스러운 여성’이란 뜻의 신조어). 둘은 △값비싼 명품 구두와 핸드백에 관심을 집중하고 △싸가지가 심하게 없다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신상녀는 자아가 분명하고 솔직한 여성임에 반해, 된장녀는 돈 많은 남자에게 물질적·심리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신상녀는 쿨하고, 된장녀는 쿨하지 않다.
영화 속 캐리는 어떨까? 멋진 데다, 부자이고, 결혼도 2번이나 실패해서 더할 나위 없이 부담 없는 남자 ‘미스터 빅’(그는 바지를 너무 짧게 입는 것 외엔 거의 완벽하다)과 10년째 동거 중인 캐리. 미스터 빅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물색하던 그녀는 값비싼 펜트하우스를 보자마자 이런 일성을 낸다. “우리 돈으로 되겠어?(Can we afford this?)”
그녀가 진정한 신상녀라면 “나 이 집 너무 맘에 들어. 좀 비싸지만 날 위해 사줘” 하고 담백하고 염치없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캐리는 결정을 남자에게 돌린다. 세상 어떤 남자가 여성의 이런 말을 듣고서 “맞아. 우리 돈으론 안 되겠어. 난 무능하니까” 하고 반응할 것인가. 결국 남자는 거금을 들여 펜트하우스를 구입한다.
집을 산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쿨하지 않다. 이젠 소유권이 문제다.
“정말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어. 이 집은 당신 소유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린 부부가 아닌데, 난 이 집에 대한 소유권도 없고….”
여성이 보통 이런 말을 꺼낼 땐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집을 ‘공동 명의’로 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도 집밖으로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보험’을 들겠다는 심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자로 하여금 청혼을 유도하려는 속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스터 빅은 “그럼 결혼할까?” 하고 반응함으로써 그녀의 함정에 빠진다.
쿨하지 못한 여성이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결혼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시킨다는 점. 미스터 빅이 “우리가 결혼해도 좋을 것 같은데, 자긴 싫어?” 하고 쿨하게 묻자, 캐리는 (속으론 무지하게 결혼하고 싶으면서도 겉으론) 이렇게 말끝을 흐린다. “아니, 자기가 원한다면야…. 정말 결혼을 원해?” 이런 여성은 결혼 후에도 십중팔구 말끝마다 “언제 내가 결혼하자고 했어? 네가 하자고 했지. 내 인생 물어내” 하면서 신세타령을 한다.
아, 그 누가 캐리를 쿨하다 했던가. 알고 보니, 정(情)에 울고 부동산에 집착하고 결혼에 목숨 거는 여성이 아니었던가. 쿨하지 않은데 쿨한 척하는 건, 처음부터 쿨하지 못한 것보다 500배 나쁘다. 캐리, 넌 나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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