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병상에서도 詩를 잡고… 시인-아동문학가 유경환 1주기

  • 입력 2008년 6월 26일 03시 25분


“시력을 잃고 병상에 누워서도 가족이 오면 맨 먼저 하는 말씀이 ‘종이 가져와라, 펜 준비해라’였어요. 힘드시니 그만 하라고 만류해도 생각이 샘물처럼 고이는데 이걸 어떻게 퍼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고 유경환 부인 김은숙 씨)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유경환(1936∼2007·사진)의 1주기를 맞아 유고 시집 ‘나무와 연못’(세손출판사)이 나왔다. 고인은 1958년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산 노을’ ‘낙산사 가는 길’ 등을 발표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빛과 희망을 노래했다. 그의 작품은 가곡 ‘산노을’ ‘성가 호수’ ‘제비꽃’ 등 노래로 불리는 것도 많다.

이번 유고 시집은 고인이 생전에 림프샘암 치료를 받으며 병상에서 썼던 시들이다. ‘나무와 연못’은 총 10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다. 고인의 장녀 서울여대 유사라 교수(문헌정보학)는 “치료를 받으면서 총 90여 편을 쓰셨지만 ‘이것만은 한 권의 시집으로 우선 만들어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중 10편만 추려 책으로 펴냈다”고 말했다. 유고 시에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엿보인다.

‘봄이 왔다/새들이 가지에 앉아 노래했다//나무가 말했다 고맙다/그러자 연못이 입을 열었다/나도 잘 들었어//물이나 한 모금씩 마시고 가렴/새들이 포롱포롱 물 마시고 갔다.’

부인 김 씨는 “나무와 연못이 사계절을 지나며 어울리는 과정 속에 당신의 일생을 다 담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집에는 고인이 2004년부터 그린 그림도 함께 실려 있다. 고인은 병을 앓기 얼마 전부터 시뿐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도 창작 열정을 쏟아냈다. 유족은 시의 분량이 적어 고민하던 중 그가 남긴 그림을 함께 엮었다. 맑고 서정적인 그림이 따뜻한 시와 잘 어우러진다. 별첨된 ‘하나의 길’은 별세 열흘 전에 쓴 시로 김 씨가 직접 받아썼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남긴 시여서 이번 시집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유고 시집 출간에 맞춰 27일 오후 6시에는 계간 열린아동문학 주최로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1주기 추모 행사도 열린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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