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86년 6월 27일 ‘니카라과에 대한 군사적, 준군사적 활동’(니카라과 vs 미국) 사건에 대해 이같이 판결했다. 16개 항에 걸친 장문의 판결문에는 니카라과에 미국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판결은 니카라과의 반미(反美)정권을 전복시키려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벌였던 미국에 대한 국제 법정의 단죄였다. 당시 표결에 참여한 재판관 14명 중 11명의 다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 영국 출신 재판관 3명만이 소수 의견을 냈다.
미국은 오랜 세월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자기네 뒷마당으로 여겨 왔다. 미국은 일찍이 1823년 ‘먼로 독트린’을 통해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는 것을 막고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우월권을 선언했다.
그런 뒷마당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1979년 친미 성향의 소모사 정권이 붕괴되고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가 엘살바도르 내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며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나아가 미국은 니카라과 영해에 수뢰를 매설하는가 하면 항만과 정유시설, 해군기지 등을 공격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특히 소모사 정권 시절 국가경비대 출신의 친미 장교들이 주축이 된 콘트라 반군을 군사적,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달리 대응할 방안이 없던 니카라과로서는 유엔의 사법기관인 ICJ에 국제법적 판단을 호소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공격을 받은 엘살바도르의 요청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ICJ는 이런 주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슈퍼파워 미국의 대응은 간단했다. ICJ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ICJ의 결정을 묵살해 버렸다.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갔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니카라과는 다시 유엔총회에 호소했고 94 대 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구속력이 없는 유엔총회 결의안은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결국 이 문제는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끝났다. 새로 들어선 차모로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원조금을 받는 대가로 1991년 ICJ 제소를 취하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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