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잠에서 깬 은행원은 ‘세상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자신이 줄어든 것이다. 몸이 작아진 그는 점차 움직일 수 없어지다가 휙 기울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오뚝이가 돼 간다. 결국 그는 ‘인신(人身)상의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둔다.
황정은(32) 작가의 첫 단편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는 오뚝이로 변해가는 은행원 이야기 ‘오뚝이와 지빠귀’를 비롯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 11편이 실려 있다. 현대인의 쓸쓸하고 우울한 정서가 주를 이루지만 기묘한 상황의 충돌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작가는 “내 소설은 모두 ‘어느 날 문득’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모자로 변하고(모자) 어느 날 문득 말하는 애완동물이 선물로 들어온다(곡도와 살다)….
그는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회의는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곡도와 살고 있다’는 그중에서도 유머가 두드러지는 작품. ‘곡도’란 이름을 가진 까다로운 애완동물은 주인의 이야기를 평가하고 재미가 없으면 무한 질주를 시작해 협박한다. 때론 콩알만 하게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가신 동물을 버리는 순간 주인은 무언가를 잃게 된다. 미소, 그림자 혹은 자신감 등을.
작가에게 곡도는 ‘글쓰기’란다. 독자들에게 곡도는 무엇일까?
그의 색다른 글쓰기에 흡입되는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인 장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보는 것은 즐겁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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