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9년, 찰스 2세가 영국 왕이던 시절 영국의 의회는 두 개의 계파로 갈라졌다.
차기 국왕의 자격을 놓고 휘그(Whig)는 가톨릭교도의 왕위 계승을 막으려 애썼고, 토리(Tory)는 가톨릭교도여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두 계파는 지지기반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토리는 토지를 소유한 귀족 계급을 대표했고, 휘그는 상공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두 계파 가운데 토리는 1830년대 초 ‘보수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당은 토리 시절을 포함하면 300년 이상, ‘보수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부터 계산해도 18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저자는 “어떻게 한 정당이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그것도 ‘보수’라는 신선하지 않은 이름을 달고 생명력을 유지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영국 의회의 역사와 보수당의 역사를 꼼꼼히 살폈다.
1868년 보수당 당수가 된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장기 집권하던 자유당을 꺾고 1906년부터 30년 동안 보수당의 집권을 이끌었다. 오늘날 보수당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보수당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사회의 개혁 요구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았다.
1997년 5월 총선. 보수당은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 참패함으로써 1979년 이후 18년간 지속해 온 집권을 마감했다. 다시 야당 신세가 된 보수당은 노동당 정부가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하는 바람에 차별성을 꾀하는 게 힘들어졌다.
2005년 12월 보수당의 새 당수로 선출된 데이비드 캐머런은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를 생각하는 진보적 색채를 도입했다. 이른바 ‘온정적 보수주의’다. 이를 통해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을 앞서게 된 보수당은 정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이런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보수정치가 어떻게 영국에서 살아남았을까’라는 처음 품었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았다.
저자가 파악한 첫 이유는 ‘보수당이 권력을 대단히 열망하는 정당’이라는 점이다. 선거 승리를 최우선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를 위해선 최대한 현실과 타협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념적 원칙을 지키기보다 실용성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찾은 두 번째 이유는 유연함이다. 보수당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다소 취약했지만 시대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이익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하기보다는 양보할 것은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뿌리째 위협받지 않도록 해 왔다는 분석이다. 보수당은 이에 따라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극 수용했다.
보수당은 또 산업혁명 이후에는 상공업자들을 끌어들였고, 노동계급에 투표권이 확대된 이후에는 이들을 지지자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저자는 “배타적 집단으로 남아 있지 않았고 외연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