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에 신사임당의 초상이 들어간 5만 원권 화폐가 발행된다.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등 남성 일색에서 드디어 여성의 초상이 화폐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사임당이 정말로 우리 화폐 속에 등장하는 첫 여성일까. 그 전에는 없었던 것일까.
화폐 속 여성을 만나보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린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서 11월 9일까지 열리는 ‘화폐 속의 여성, 그들이 꿈꾼 삶’.
동서고금, 화폐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6개 코너로 나뉜다.
첫 코너의 주제는 ‘세상을 품에 안은 여성들’. 현재 살아 있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 20세기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 등.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의 화폐에 모두 등장했다.
‘예술로 세상에 말을 걸다’ 코너에선 독일 작곡가 슈만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 덴마크 소설가인 카렌 블릭센, 에스토니아 시인 리디아 코이둘라, 스웨덴의 오페라 가수 옌니 린드 등의 초상이 담긴 화폐를 감상할 수 있다.
‘섬김의 삶을 위하여’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한 여성들 코너.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교육가였던 마리아 몬테소리, 영국의 간호사였던 나이팅게일, 아일랜드의 사회사업가이자 수녀였던 캐서린 매콜리 등의 초상 화폐를 만난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편린’은 라오스 르완다 등 남성 중심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온 여성들의 모습을 디자인해 넣은 화폐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1원권. 북한 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를 모델로 삼았다. 가극의 주인공이 화폐 도안으로 등장한 것은 화폐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
그럼 우리 화폐에는 어떤 여성들이 등장했을까. 우선, 1962년 5월 발행된 100환권 속의 모자(母子)를 꼽을 수 있다. 국내 최초로 화폐에 여성이 등장한 경우.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와 색동옷을 입은 아들이 저금통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디자인되어 있다. 당시 국민에게 저축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20여 일 뒤 제3차 통화조치 실시로 유통이 정지됐다. 국내 화폐사상 최단명 화폐가 된 셈이다. 기념주화이긴 하지만 선덕여왕, 유관순 등도 1970년대 화폐에 등장했던 인물들.
이 특별전 외에도 화폐금융박물관엔 즐거운 볼거리가 많다. 근대 건축물의 매력도 좋은 데다 상평통보가 가득 찬 돈 궤짝 구경하기, 꿈에 그리던 돈방석에 앉아 보기, 1억 원짜리 돈다발 들어 보기 등등. 월요일 공휴일 휴관. 무료. 02-759-4881∼2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