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김 “한국색채 작품 러시아서 통해 뿌듯”

  • 입력 2008년 7월 4일 02시 58분


“한국인의 혼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소설가로 당당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의 피가 내 몸에 흐르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칠순 노인의 눈은 형형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고려인 3세 소설가 아나톨리 김(70·사진) 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일 오후 8시(현지 시간)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러시아문학기행에서 특별강연을 맡은 김 씨는 “지극히 한국적인 내 소설들이 러시아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는 것에 긍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73년 단편 ‘수채화’로 데뷔한 김 씨는 198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장편소설 ‘다람쥐’로 러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그의 작품은 2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러시아 대학 및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당시 러시아에서 주류를 이루던 사회주의 문학과 달리 김 씨의 소설은 몽환적이고 염세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색채를 잃지 않는 작품이 많다”고 평가했다.

“모든 작품의 주제는 한마디로 ‘존재와 사랑’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고독한 이방인으로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존재의 이유를 되물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소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말로 ‘사랑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김 씨는 그런 타자에 대한 사랑이 진실하려면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고 봤다. 김 씨는 “족보를 따져보니 조상 중에 조선시대 문인 김시습이 나오더라”면서 “제가 문학의 길을 걸었던 것도 그런 선조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김 씨는 러시아를 떠나 자신이 태어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갔다. 나고 자란 고향 역시 자신의 뿌리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 최근 김 씨는 러시아 클래식 문학을 카자흐스탄 현지어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고령에도 하루 10시간씩 꼬박 번역에 몰두한다.

“카자흐스탄어 번역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남은 사명은 한국과 러시아 문학이 좀 더 깊이 교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모스크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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