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종교 편향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시국법회는 계속될 겁니다.”
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를 개최한 불교계는 결연한 분위기였다.
시국법회 공동추진위원장인 수경 스님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 시위 진압과 관련해 진솔하게 국민에게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 곳곳의 스님들이 사찰 밖으로 나와 시국법회까지 개최하는 숨은 배경에는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자리 잡고 있다. 불교계가 “현 정부의 종교 편향이 도를 넘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불교계는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을 비롯해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 이용정보시스템인 ‘알고가’의 사찰 정보 누락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독교 행사 포스터 사진 게재 △경기여고의 불교 근대문화재 훼손 등이 현 정부의 특정 종교 편향에서 비롯됐다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불교계는 시국법회 하루 전인 3일 이런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이명박 정부 종교 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를 구성했다. 이 연석회의는 서울광장 시국법회를 적극 지원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인 성묵 스님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을 사탄의 무리라고 발언하고 청와대에서 정부 복음화를 주창하는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의 시대착오적 발상을 우려한다”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특정 종교 편향은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교권 수호의 문제, 사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편향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 불교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시국법회가 열리기 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만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이번 법회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지관 스님은 시국법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불교계는 정부에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공직자 윤리 규정에 재산이나 도덕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종교적인 편향의 문제, 공직자의 지위를 이용해 특정 종교를 포교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며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하안거 수행 중인 스님들도 선원을 나와 법회에 참가하도록 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밝혔다.
정부 조치가 가시화되지 않는 한 시국법회와 같은 집단행동은 촛불시위와 맞물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새 정부가 종교 편향적이진 않지만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불교계에서 일어나는 불만을 이해한다”며 “불교계의 불만을 겸허히 받아들여 종교 편향이란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