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꾸미지 않은 듯, 천진한 글씨들이 반겨준다. 소박한 문구들이 독특한 한글서체와 어우러져 정겨움과 편안함을 전해준다. 이에 비해 서정추상 계열의 붉은 산 연작의 그림에선 활달한 미감과 단단한 중심이 느껴진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산으로 첩첩산중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화가 이진경의 ‘산은 물을 만나고’전에서 만나는 작품들이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휘닉스아일랜드 글래스하우스 1층에 있는 파랑갤러리(064-731-7000)의 개관전으로 기획된 그의 개인전은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이진경 체’로 알려진 텍스트 작업부터 회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시도해 온 작가는 자신의 불탄 작업실에서 건져낸 종이를 작품으로 활용했다. 망가진 것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오롯이 보듬어낸 작업에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리기는 보기와 같다. 보기의 관람자가 그리기의 작자를 이어준다. 나는 통하고 싶다. 그리기의 목적은 나는 살아 있고, 내가 살아가며,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즐거워지는 것, 생은 그리기다.”(이진경)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