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즉 ‘아태’를 밥 먹듯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의 함의에서는 아시아와 미국의 관계만 도드라진다. 태평양 상공에서의 지루한 비행만 생각했지,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태평양 생각보다는 불 꺼진 비행기 안에서 ‘전원 취침’ 중이었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우리들의 ‘아태’에서, 정작 태평양은 빠져 있다.”
저자의 이 일갈이 책의 주제를 포괄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관심사 저 멀리 있었던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들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해양학 민속학 미술사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강현(사진) 해양문화연구소장이 하와이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제도 등 태평양에 있는 적도 인근의 섬들을 답사한 여행기이자 민족지(민족의 생활양식 전반을 조사해 기술한 것)다.
저자는 태평양 섬들을 ‘계몽하고 식민지화해야 할 야만’으로 본 서구식 사고에서 벗어나 ‘섬주인’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서구화로 왜곡된 전통 문화,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식민지 역사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관습과 일상, 지구 온난화 탓에 수면이 높아져 고통 받는 이야기까지 태평양 섬들에 대한 전방위적 이야기를 쏟아낸다.
태평양 섬을 연구하는 저자에게 한 사학자는 물었다.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 아니오?” 저자는 미크로네시아 제도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징용된 ‘남양군도’이고 하와이는 1903년 한인들이 처음 이주한 곳임을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과 관련된 태평양 이야기만 찾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수미일관 민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류 전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미국령 하와이의 역사에서 벗어나 식민지가 되기 전 독립 왕국 하와이의 역사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
하와이의 첫 발견자는 18세기 제임스 쿡 선장이 아니다. 기원전 1500년경 동남아시아의 고대 라피타 문명인들이 인도네시아를 출발했다. 그들의 고단하고 오랜 여정은 멜라네시아, 통가, 사모아제도, 피지, 타히티로 이어졌고 1900년 전 하와이가 ‘발견’됐다.
제임스 쿡 선장의 최후를 원주민 시각에서 바라본 부분도 흥미롭다. 쿡 선장은 하와이 원주민과 갈등을 빚다가 원주민이 던진 창에 맞아 죽었다. 문명과 야만의 돌발적 갈등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주민 신화로 보면 다르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평화의 신 로노와 전쟁의 신 쿠가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쿠가 섬을 지배할 때면 외부의 약탈자가 섬에 침입해 새 종교를 세운다고 믿었다. 쿡 선장이 처음 하와이를 찾았을 때는 로노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쿡 선장은 로노 신의 화신으로 경배 받았다. 그러나 4개월 뒤 쿠의 지배가 시작되는 시절이 왔고 마침 쿡 선장의 부하가 원주민과 갈등을 빚었다. 쿡 선장은 쿠의 화신으로 교체됐다. 쿡 선장의 죽음은 단지 돌발적 마찰 때문이 아니라 신화가 현실로 구현됐다는 원주민들의 믿음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훌라춤은 본래 즐거움과 경외, 노래, 기도, 한탄, 신에 대한 찬미가 어우러진 원주민 사회의 대표적 제의였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이를 접대용 환락 춤으로 변질시켜 관광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이처럼 태평양 섬들 곳곳에서 전통 문화가 왜곡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문화의 원형질을 찾아 나선다. 태평양 제도의 한 섬인 웨노 섬에서 오래된 할머니 정령이 살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영산 토나차우 산을 찾아 원주민들의 민간신앙을 소개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미크로네시아 원주민들이 이엉으로 지붕을 엮어 살던 시절의 성풍습도 소개한다. 남자는 ‘사랑의 막대기’라 불리는 기다란 막대기를 마음에 드는 여자의 방으로 밀어 넣는다. 여자가 허락하면 관계를 갖는다. 집마다 가족 무덤을 함께 간직하는 장례 풍습도 소개한다.
책 내내 서구 문명으로 왜곡된 전통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제목은 바람 한 점 없는 적도의 기후를 표현한 동시에 서구 문명화로 전통 문화를 잃어가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원주민들의 슬픈 자화상을 은유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