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마시는 와인] 고추밭 개간해 포도 재배, 매운맛 품은 와인의 탄생…그라벨로

  • 입력 2008년 7월 14일 08시 18분


《지난줄거리 - 와인을 잘 몰라 스트레스를 받던 정유진은 소믈리에로 일하는 고교 동창 김은정에게 연락해 매주 한 차례 과외를 받기로 한다. 정유진은 돔 페리뇽 수사가 코르크 마개를 발명해 지금처럼 샴페인을 마시고, 백년전쟁의 원인 속에 와인이 있고, 샤블리는 토양이 중생대 바다여서 굴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차례로 배운다.》

더운 날씨에 입맛이 영 없다. 하지만 와인만큼은 마실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달려갈 정도로 점점 재미가 붙는다. 특히 김은정에게 와인 과외를 받기 전날은 어떤 와인을 마시게 될까라는 기대감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다.

열네 번째 와인 과외날. 땀을 훔치고 자리에 앉는데 김은정이 “너, ‘그라벨로’라고 알지?”라고 물어본다.

“그라벨로.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맞아!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이잖아. 오늘 설마 그 와인을 마시는 거야?”

“맞아. 바로 그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그라벨로’를 들고 왔어. 최근 국내 시장에 수입됐는데 내 성격에 맛보지 않고 견딜 수 있어야지. 수제자랑 함께 마시려고 이렇게 준비했지.”

보랏빛이 감도는 영롱한 루비 레드 컬러의 액체가 잔에 채워졌다. 잔을 가볍게 돌리니 초콜릿, 블루베리, 딸기, 자두 등 향이 풍부하게 발산된다. 입 안을 가득 채운 질감은 부드럽지만 목을 넘어가면서 매콤한 뒷맛이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맛이다.

“어때? 느낌이 독특하지. 그라벨로는 ‘신의 물방울’에서 매운 음식이 많은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으로 묘사됐는데, 정말 매운 맛이 있어. 그런데 내가 좀 찾아보니까 매운 맛이 날 만한 이유가 있더라고.”

“그게 뭔데?”

“그라벨로를 생산하는 리브란디 와이너리는 이탈리아 남서부 칼라브리아 지방에 위치해 있어. 칼라브리아 지방에는 붉은 고추밭이 많이 있고, 리브란디 와이너리도 고추밭을 개간해 포도밭으로 만들어 와인을 만든거지.”

“예전 고추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 매운 맛이 있다는 거네. 야, 그거 재미있는데. 마치 중생대 바다여서 굴 껍질이 많이 함유된 토양에서 만든 샤블리가 굴과 잘 어울린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스토리잖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자연의 이치라는 게 참 신기한거야. 외형적으로 변한다 해도 본질적인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이건 뭘로 만든 거야?”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갈리오포와 까베르네 소비뇽을 6대4의 비율로 블렌딩했어. 갈리오포는 강한 산미와 탄닌이 특징으로 예전 칼라브리아가 그리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 신에게 바치는 용도로 사용한 와인 ‘크리미사’에 사용되면서 전성기를 맞은 적도 있지만 이후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지. 그러다 1988년 리브란디 와이너리의 양조 컨설팅을 담당하던 세베리노 갈로파노가 갈리오포와 까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했고, 그 결과 뛰어난 와인을 탄생시킨거지.”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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