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인물로 비쳐 당혹스러워”
“대낮의 활력,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
14일 낮 12시, MBC 라디오 FM4U에서 진행자 정선희(36)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달 7일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 진행에서 물러난 지 37일 만이다. 그는 5월 22일 방송에서 “애국심을 불태우며 촛불집회를 해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맨홀 뚜껑을 퍼가는 일 등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라는 말을 한 뒤, 촛불 시위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물러났다.
“정말 오랜만에 자리에 앉아서 시그널을 들으니까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북받쳤던 것 같아요.”
서울 여의도 MBC 7층 라디오 스튜디오. 광고가 나가는 동안 눈물을 흘리던 정선희는 목멘 소리를 가다듬어 가며 진행을 계속했다.
“‘정오의 희망곡’은 저에게 여러분이 속상했던 일, 기분 좋았던 일, 취업을 원하다가 간신히 회사에 들어가서 너무 기뻐했던 일, 그런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하나의 역사처럼 공유하던 공간이었는데 어느새 제가 정치적인 인물로 해석이 되니까, 당혹스러웠어요. 어린아이처럼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고만 싶었고….”
방송이 끝난 뒤, 정오의 희망곡을 연출했던 안혜란 PD가 정선희를 찾아와 포옹을 하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2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때로 웃으며 떠든 정선희의 눈은 여전히 빨갰다.
“제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에요. 농담하다가 청취자들이 다 장난으로 느끼시면 어떡하나 걱정되고, 또 울면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 테고요.”
정선희의 복귀가 알려진 뒤 반대 글과 찬성 글이 프로그램 게시판에 이어졌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리하느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로 매일 고민했어요.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이 아닌데 상처 받았던 분들이 계시고. 그동안 진심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닫혀 있었어요. 지금 그분들을 다 위로하지 못하겠지만 제가 아파하고 고통 받은 만큼 남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어요.”
그가 복귀하기 전 1만3000여 명의 누리꾼이 ‘정선희 구명운동’에 서명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방송국을 떠나던 그에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망연자실함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겁났어요. 식사도 잘 못했고, 제가 이렇게 ‘좌절모드’니까 가족들한테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다른 방송의 진행자로 돌아가는 것은 아직 엄두가 안 나요. 웃겨야 하는데 그 모습 보고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고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