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사물을 새롭게 보는 창의적 발상

  • 입력 2008년 7월 15일 03시 04분


허겁지겁 살아온 나를 돌아본다

의젓하고 당당하다. 한쪽 다리가 없거나 밑 빠진 의자들과 문짝 떨어진 가구들이 새 생명을 얻고 부활한다. 형광빛 플라스틱으로 만든 버팀다리와 인공시트, 탄력 있는 끈 등 기발한 디자인 소품으로 부상당한 곳을 ‘수술’ 받은 덕분이다.

8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미술관(02-425-1077)에서 열리는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전에서 만난 ‘5.5 디자이너’ 그룹의 ‘소생’ 프로젝트다. 뱅상 바랑제, 장 세바스티앙 블랑, 안토니 레보세, 클레어 네나르 등 20대 디자이너들은 낡고 부서진 가구를 치유하는 ‘의사’를 자처한다. 단순히 새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손때 묻은 물건을 창작 대상으로 삼아 제자리를 되찾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사물이든 인생이든 흠집 난 부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흠집은 우리의 일부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삶 자체를 거부하는 것임을.

이들의 작업은 친환경적이고 생태적 인식을 담고 있으면서 유머감각도 풍부하다.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진다. 디자인에 무관심한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복제’는 미디어를 통해 숭배받는 특정 이미지가 아니라 현재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고 격려하는 독특한 디자인 서비스다. 전시장에선 헤어스타일과 신체 치수 등 각자의 고유한 특징을 바탕으로 만든 커피잔, 옷걸이, 거울, 램프 등 맞춤형 생활집기를 볼 수 있다. 가령 머리숱이 적은 사람을 위한 빗이나 몸무게에 맞춘 쿠션 등 ‘나만의 아이템’은 장난스러우면서도 일상의 평범함을 특별하게 변신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예술가들은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사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그들의 창의력이 녹아든 작품을 접하면서 우리는 유연한 사고의 에너지를 수혈받는다. 나이 먹을수록 사고의 틀이 좁아지는 어른들에게 창의적 사고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미술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도 즐겁게 보고 생각의 지평까지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반가운 이유다.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02-736-4371)에서 열리는 ‘크리에이티브 마인드’전도 현대미술을 통해 톡톡 튀는 창의력을 배울 수 있는 자리다. 손혜진 씨의 ‘쏘다’는 자석과 바늘의 자성을 이용한 기하학적 입체작품으로 마치 공중에 멈춰버린 총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일상의 오브제와 조명을 결합해 그림자 조각을 선보인 차상엽, 밥풀을 이용해 밥상을 연출한 황인선, 하얀 수건을 재단해 화장실을 꾸민 김희경, 모니터 안과 밖을 비눗방울로 잇는 영상설치작품을 내놓은 김형기 씨 등. ‘거꾸로 보기’와 ‘낯설게 보기’의 방법을 일러주는 작품들은 인식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고를 말랑말랑하게 하는 데는 애니메이션도 한몫한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벅스 라이프’를 제작한 픽사의 호르몬은 바로 창의력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전(9월 7일까지·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02-561-4963)의 경우 아날로그적 꿈과 감수성이야말로 디지털 세계를 추동하는 엔진임을 보여준다. 80명의 아티스트가 손으로 빚어낸 드로잉 조각 회화를 통해 온갖 감정을 느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이 필요하다. 그저 남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허겁지겁 좇아가는 삶에 참신한 영감이 깃들 자리는 없다. 그래서 예술가의 창의적 도전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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