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동서의 선율, 서로를 유혹하다

  • 입력 2008년 7월 17일 03시 00분


피리 연주자 강효선(왼쪽)과 마림바 연주자 한문경. 태생적으로 이질적인 악기를 다루는 두 연주자는 전통과 낭만이 살아 있으면서도 생동감 있게 물결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김경제  기자
피리 연주자 강효선(왼쪽)과 마림바 연주자 한문경. 태생적으로 이질적인 악기를 다루는 두 연주자는 전통과 낭만이 살아 있으면서도 생동감 있게 물결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김경제 기자
《국악기인 세피리의 애절한 가락 사이로 금속통을 울려 나오는 마림바의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두드림이 파고든다. 늦가을 갈대숲의 마른 꽃술들이 서로 몸을 비벼대는 작은 소리로부터, 성난 파도의 일렁이는 힘찬 소리까지…. 정(靜)과 동(動), 선율과 리듬, 전통과 현대의 벽을 넘어 두 사람은 서로를 토닥이며 음악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피리 연주자 강효선(32·국립국악원 창작국악단)과 마림바 연주자 한문경(21·미국 줄리아드음악원 4년). 두 사람이 마림바와 피리를 위한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놓았다. 수많은 국악 퓨전음악 중에서도 현대음악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독특한 음색을 지닌 음반이다.》

피리의 애절함… 마림바의 강렬함…

○ 강효선-한문경, 크로스오버 음반 내놓아

강효선은 12일 베트남에서 열린 미스코리아들의 ‘한-베트남 교류 패션쇼’에서 ‘상령산’ 피리 독주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전통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인 강효선은 2006년 피리로서는 첫 크로스오버 앨범 ‘어트랙션’을 내놓기도 했다.

“피리는 조그만 악기지만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음색을 갖고 있어요. 피리는 가야금이나 거문고, 해금 같은 현악기와 달리 파워풀한 악기입니다. 마림바나 어떤 서양의 타악기와 만나도 전혀 꿀리지 않는 다이내믹한 음색을 갖고 있습니다.”(강효선)

대나무에 ‘서(리드)’를 끼워서 부는 피리는 궁중 정악(正樂)부터 민속음악, 굿음악 등 국악에서는 빠지지 않는 선율악기다. 마림바는 화려한 화성과 강렬한 리듬으로 서양 현대음악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악기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소리를 넘나들다’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 강효선은 피리, 생황, 태평소를 불었고, 한문경은 마림바, 비브라폰, 드럼 등 타악기를 연주했다. 평소 듣기 쉽지 않은 강렬한 음색의 서양 타악기와 국악 관악기들이 마이크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 이질적인 두 악기를 위한 ‘카투타’

“‘카투타(Katuta)’는 이누이트(에스키모) 말로 ‘함께 하자(let’s go together)’라는 뜻입니다. 피리와 마림바는 태생적으로 이질적이지만, 둘 다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서로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고,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잘 어울렸지요.”(한문경)

한문경은 4세 때부터 타악기 앙상블 멤버로 활약해 신동으로 손꼽혔다. 10세 때 금호스페셜 콘서트에서 국내 최연소로 마림바 솔로 리사이틀을 열었고, 일본 마림바 콩쿠르 그랑프리, 파리 학생 마림바 콩쿠르 우승 등으로 주목받은 타악계의 무서운 신예 연주자다. 이번 음반에는 스승인 국내 ‘타악계의 대부’ 박동욱 선생의 신곡도 담겼다.

1년간의 연주와 녹음작업을 거쳐 나온 이번 앨범의 제목은 ‘적스터포지션(juxtaposition)’. ‘병렬배치’라는 뜻으로 동서양 소리가 서로 토닥이며 나란히 가는 모습을 담았다. 중모리, 휘모리, 자진모리 등을 변형시킨 ‘모리’(박정규), ‘생황과 마림바를 위한 카투타’(구본우), ‘비둘기의 꿈’(에릭 사뮤) 등 7명의 국내외 작곡가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다.

국악평론가 윤중강 씨는 “피리의 강물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선율은 ‘은근과 끈기’의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한다”며 “피리의 선율에 마림바의 화성과 리듬이 어우러지며 보기 드문 앙상블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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