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의 눈으로 한-일관계 풀어보았죠”

  • 입력 2008년 7월 17일 03시 00분


정양환 기자
정양환 기자
조선통신사 소재 팩션 ‘왕의 밀사’ 펴낸 허수정씨

“조선시대이긴 해도 좀 더 넓은 무대를 넘나드는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을 쓰려 했습니다. 일본에 간 통신사가 휘말린 살인사건 속에서 한일관계도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텁텁한 여름밤을 지새울 역사 팩션 한 편이 등장했다. 16일 출간된 ‘왕의 밀사’는 2006년 ‘뿌리 깊은 나무’, 지난해 ‘바람의 화원’ 등 팩션에 강점을 보여온 출판사 밀리언하우스의 새 라인업. 효종 6년(1655년)에 조선통신사 파견이란 역사 속 실제상황을 배경으로 했다. ‘천년제국’ ‘해월’ 등 역사물을 줄곧 써 온 소설가 허수정(45·사진) 씨가 처음으로 팩션 분야에 도전했다.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법과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역사나 시대상황에 대해 많은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작품 구상과 취재만 2년 반 정도 걸렸어요. 일본도 여러 차례 다녀왔죠. 오히려 글을 쓰는 건 즐겁게 몰두해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왕의 밀사’는 일종의 미스터리 역사추리소설. 왕의 밀명을 지닌 조선통신사 종사관 남용익은 일본이 베푼 향연에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다. 만취했다 깨어 보니 대작했던 쇼군의 하급무사 기요모리가 살해된 것. 합석했던 승려 도겐은 남용익을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그의 누명을 벗기려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수행역관 박명준. 그 앞에 사건 뒤에 숨어 있던 무서운 음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허 씨는 특히 주인공 캐릭터에 애정을 표현했다. 박명준은 임진왜란 때 끌려갔다 10년 만에 귀국한 도공의 아들. 조선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일본에 대한 이해도 풍부하다. 허 씨는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에게 자유로운 시각을 부여하려 노력했다”면서 “무조건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인 제3자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효종을 좀 더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지도자로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대표 시인 마쓰오 바쇼를 등장시키는 등 흥미로운 장치를 많이 뒀습니다. 사실에 근거하긴 해도 이건 픽션일 뿐입니다. 몰입하는 건 고마운데 ‘이게 진짜냐’고 묻는 이도 있거든요. 시대의 향취를 느끼며 재미있게 읽어주면 그만입니다. 제가 받은 통쾌함을 독자들도 느끼면 좋겠네요.”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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