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은 그 배들을 이양선(異樣船)이라 불렀다. 16세기 이후 조선 앞바다에 출몰하기 시작한 이상한 모양의 배들.
그 배들의 주인은 ‘지리상의 발견’(15세기) 이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명목으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비던 서양인들이었다.
세계가 서양의 새로운 질서에 편입돼 가기 시작한 15세기 이후에도 동아시아 외교의 키워드는 여전히 쇄국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배타성은 더 극단적이었다. 조선은 서양인과 백성들의 접촉을 아예 금지했다.
그래도 서양 배들은 기어코 조선에 들어왔다. 16세기에는 우연히 표류하거나 식량, 물을 찾아 상륙한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의도된 탐험, 통상 요구, 선교를 위해 조선의 뭍을 찾는 배가 늘어났다. 조선은 그럴수록 문을 닫았다. 조선은 외국인에게 적대적이고 냉정한 나라로 여겨졌다.
이 책은 이런 역사를 담았다. 16세기 이후 서양 배들이 조선을 찾은 열여섯 사례를 재구성했다.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억류당한 하멜이나 미국 군함이 강화도에 침입한 1871년의 신미양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1866년의 병인양요 정도만 아는 독자라면 서양의 수많은 탐사선, 상선, 측량선, 군함이 이미 조선을 다녀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많은 부분의 서술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흘러가는 점이 흥미롭다. 사례마다 앞부분은 조선을 처음 찾은 서양인의 제한된 시각으로 진행된다. 방문자들은 도대체 왜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그토록 경계하는지 알 수 없다. 각 사례 후반부는 조선의 시각이다. 관리들이 서양 배의 출몰에 당황해하며 조정에 보고하는 상황들이 전개되면서 서양인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해결된다.
1832년 상선으로서 조선을 처음 찾은 영국의 로드 애머스트호. 이들은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다. 왕에게 보내는 통상 청원서를 지방 관리에게 전하지만 조선 관리는 왕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서양인들은 청원서가 왕에게 전달됐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한다. 조선에서는 조정의 허락 없이 백성이 이국인과 교역하는 것은 참수형감이었다. 이를 아는 조선 관리는 애초부터 서양인과의 교역에 뜻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왕인 순조는 애머스트호의 출현을 보고받았다. 문정관들은 영국에 대한 정보를 속속 조정에 올렸다. 조선 조정은 이 사실을 청나라에까지 알렸다. 결과는 접촉 금지였다.
고문서를 다수 소장한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인 저자는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일기, 여행기, 항해일지, 보고서는 물론이고 조선이 서양 배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문정관의 기록도 함께 뒤져 당시 상황을 생생히 구성했다. 덕분에 조선인들의 행동과 말투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도 장점. 조선인들이 말이 안 통하는 서양인들에게 그들과 물건을 주고받으면 사형 당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한 몸짓은 “집게손가락으로 목을 가르는” 것이었다.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조선인의 본성이 이방인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이방인과의 접촉을 막는 조선 조정의 엄한 규율과 낯선 세상에 대한 공포가 뒤섞인 결과임을 이 책을 전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