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남성판 ‘섹스 앤드 더 시티’…‘독신남 이야기’

  • 입력 2008년 7월 19일 03시 00분


◇독신남 이야기/조한웅 지음·이강훈 그림/208쪽·1만1000원·마음산책

혼자 사는 웃기고, 골 때리는, 그러면서도 귀여운 30대 남자 키키봉.

그의 글이 유쾌하고 재밌는 건 이 세대가 공감하는 모든 것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모라토리엄적 인간. 30대 독립이란, 다르게 말하면 30대까지도 부모님 품에 의지하며 ‘귀여운 아들’로 살았다는 말이다. 술 마신 다음 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북엇국에 익숙하고 독립 1년 만에 ‘…엄마 나 다시 들어갈까’라고 은근히 물어보는 천진함. 어쨌든 그가 독립생활을 꿋꿋이 유지하고 있으니 헬리콥터족이나 캥거루족의 불명예는 씻었다 친다면 다음은 히피나 오타쿠(마니아)적 삶으로의 선회 시도.

특이한 고급 취미를 가지기 위해 미대생에게 판화 과외를 받는 그에게서 어떻게든 ‘나’를 ‘대중’과 차별화하기 위해 애 쓰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러나 실크스크린과 석판화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기 힘들어 ‘고상한 취미는 돈이 든다’는 교훈을 얻고 4주일 만에 눈물을 머금고 과외를 관두는 그에게서 히피든 오타쿠든 그 모든 차별화는 결국 소비주의의 바탕 위에서 이뤄짐을 다시금 느낀다.

온통 여자들로 득실대는 화장품 가게 앞에서 무척이나 망설이다가 마침내 ‘허브 샐러드 크림과 클렌징 폼’의 직접 구매에 성공하는 대목에선 대도시 그루밍족(패션·미용에 투자하는 남성들)의 어렴풋한 징후를 느끼게 되고, 파출부든 누구든 ‘예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순간 모든 것이 용서되는 솔직담백함과 옆집 여자와의 로맨스 시도, 독신 남성들 간의 수다 등에서 남성판 ‘섹스 앤드 더 시티’를 보는 것도 같다. 게다가 키키봉은 카페 창업에도 성공하니 그의 전작 제목처럼 ‘낭만적 밥벌이’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 아닌가.

물론 이 책이 읽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좌충우돌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맛깔 나는 언어로 그려낸 저자의 필력과 그 필력에 묻어나는 그의 소탈하고 정겨운 인간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스코리아 뺨치는 이들을 기대하며 갔던 트랜스젠더 바에서 여장한 ‘형’과 대작하는 일화나 마뜩찮게 따라간 점집에서 만난 ‘안암거사’님의 조언에 따라 열을 다스리는 빨간 팬티만 사다 모으는 일화 등에선 정말 웃음이 터진다. 감각적인 그림 역시 재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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