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마르크스-엥겔스 유고 방랑…‘니벨룽의 보물’

  • 입력 2008년 7월 19일 03시 00분


◇니벨룽의 보물/정문길 지음/678쪽·3만5000원·문학과지성사

1883년 3월 14일 오후 카를 마르크스는 방대한 원고와 편지, 장서를 남긴 채 서재의 안락의자에 앉아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마르크스는 생전에 완성 못한 ‘자본론’의 완성자로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지목했다. 엥겔스는 ‘자본론’의 집필에 독일 사민당의 젊은 당원들 중 학문적으로 유능한 카를 카우츠키를 동참시켰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의 유산을 ‘니벨룽의 보물’에 비유했다. 마르크스의 유산이 신화 속 니벨룽의 보물처럼 유산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뜻에서였다.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엥겔스가 세상을 뜬 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遺稿)는 쟁탈전에 휘말리고 소유권은 유족과 독일 사민당으로 양분됐다.

고려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줄곧 연구해온 학자. 그는 4년 동안 일본, 독일, 네덜란드를 오가며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가 어떤 굴곡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지 추적했다. 유고를 둘러싼 사람들의 탐욕과, 정치적 격동 속에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유산의 운명 등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엥겔스가 사망한 직후의 유고 쟁탈전이 가장 대표적이다. 엥겔스가 지목한 상속자는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노였다. 그러나 유고를 노린 사민당의 음모로 일부 유고는 사민당에 귀속됐다.

엘리노는 1897년부터 아버지의 유고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남편의 배신에 엘리노가 자살하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유고는 엘리노의 언니인 라우라에게로 갔다. 이것도 잠시. 라우라 역시 파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동반 자살함으로써 유고는 라우라의 딸 예니에게로 전해졌다.

1933년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스 정권의 등장으로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는 또다시 위협을 받게 됐다. 사민당은 나치스 정권의 압수를 피하기 위해 유고를 덴마크 코펜하겐과 프랑스 파리로 보냈다. 나치의 정치적 압박이 커지고 재정이 빈약해지면서 사민당의 해외 망명 지도부는 마르크스-엥겔스 유고를 포함한 사민당의 고문서들을 암스테르담의 국제사회사연구소에 매각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유산을 대부분 상실하게 됐다.

저자는 유고를 둘러싼 이런 역사적 사건을 짚은 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1988년 1월 22일 암스테르담 국제사회사연구소의 서고에서 마르크스의 유고 ‘경제학·철학 초고’의 원본을 열람한 것을 계기로 마르크스가 남긴 유고의 기구한 유전(流轉)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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