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의 작가인데다 방송 시트콤에 출연하고 CF도 찍는 소설가 이외수(62). 환갑을 넘긴 나이인데도 네티즌들의 열광 속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씩 웃고 만다.
19일 그가 사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서는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주최로 독자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외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참가 신청자만 500명이 넘었다.
이외수의 '감성'은 요즘 분야를 넘나들며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그의 산문집 '하악하악'은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다. 그는 요즘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 애꾸눈 선장으로 출연중이며 최근 휴대전화 CF 촬영까지 마쳤다.
또 이외수가 나무젓가락으로 쓰는 글씨체는 조만간 '이외수체'라는 폰트로 제공될 예정이다. 지난 한 해 감성마을 방문자는 4000명이 넘어 화천군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는 화천의 군인들부터 카이스트 최고경영자과정의 CEO들에게까지 인기 있는 명강사이기도 하다.
스스로 칭한 대로 그는 '노털 옵하'('나이든 오빠'라는 뜻의 인터넷 용어)일 뿐이고 문학이 죽었다는 시대에 글로 먹고 사는 글쟁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에게 열광하는 걸까.
이날 감성마을에 모인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0대 학생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부까지 이외수는 세대와 성별을 넘어 사랑받는 독특한 작가였다.
이 작가는 예정된 시간(오후 2시)보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밤샘 작업하고 낮잠을 자는 오래된 습관 탓에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여전한 그의 기행에 모두 너그러웠다. 아침 9시 집합 시간을 정확히 지켜 출발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은 늘 그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악하악'의 그림을 그린 화백 정태년 씨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동안 긴머리를 땋아 내리고 세수도 하지 않은 그가 오후 4시 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인터넷 폐인으로 살다보니...허허...그래도 오늘은 일찍 일어난 거야..."
산문집 '하악하악'은 벌써 26만부가 팔렸다. "글을 신앙처럼 여기는 식구들 덕분에 목숨을 걸다시피 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며 식구들에 대한 감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 생활 30년. 출간한 책만 해도 20권이 훌쩍 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스럽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써요. 비법은 없죠. 컴퓨터를 배우기 전에는 바닥에 엎드려 글을 썼는데 방안에 파지가 가득 차면 빈 자리를 찾아가면서 집필에 몰두하고는 했어요, 결국 허리가 망가져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작업을 하게 됐어요."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일화를 듣고는 좌중에 큰 웃음이 번졌다.
"채팅을 하면 타자를 빨리 배울 수 있다고 둘째 아들이 권유했는데 '안녕하세요' 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너무 답답해서 채팅방을 나가고 싶은데 나갈 줄을 몰라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아 버린 적도 있어요."
지금은 1분에 300타 정도, 글쓰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하악하악'에 여백이 많아 책값이 아깝다고 항의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발끈했다.
"그러면 전화번호부를 사서 보면 되잖아. 요즘 시대에 의식의 여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나 '하악하악'에서 시도한 빈 여백은 독자들의 몫이예요. 여백마저도 의식의 진행 순서를 계산해서 260개의 글과 그림과 일일이 직접 배치하는 고단한 작업입니다."
이어 이외수의 문학 강의가 이어진다.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이어지는 그의 강의는 명쾌했다.
"정독이냐 다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글과 합일되면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어요. 책 속의 인물이 되어 가슴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법이죠."
좋은 글을 쓰는 필수 요소를 "적절한 어휘를 구사할 것, 정확한 문법의 기본 문장만 쓸 것, 주제는 휴머니즘에 기반할 것"이라는 3가지로 요약했다. "그 상황에 적확한 어휘를 찾기 위해 단어 채집 노트만 20권이 넘게 만들었다" 고 치열한 글쓰기 과정을 고백했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 용어나 신조어를 쓸 때에도 그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기호가 아니라 문자를 쓴다는 원칙을 정해두고 ㅋㅋ같은 자음은 쓰지 않는다.
작가로 전업해서 먹고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는 한 독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응답했다.
"감자 농사를 지어도 상위 10% 안에 들면 먹고 살 수 있어요. 어중간하게 하기 때문에 돈 걱정을 하게 되는 거야. 병 뚜껑을 줍는 일이든 뭐든 원하는 일에 10년만 바쳐봐. 그렇게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면 누구라도 대가가 될 수 있어."
감성마을 모월 봉우리에 해가 기울었지만 참가자들의 질문은 계속됐다. 좋은 어른, 좋은 작가가 되고 싶은 그들은 이외수에게 삶의 지혜를 구하고 싶어했다.
독자 박은영 (44·여)씨는 "80년대 당시 '이성'이 지배하던 대학가에서 이외수 작가는 '감성'의 표상이었다. 그의 기행은 이념에 짓눌린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탈이었다"고 말했다.
"이외수 원작의 영화 '들개'를 보고 나서 친구들과 비 내리던 서대문 거리를 걷던 추억은 내 청춘의 상징"이라며 그런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여기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참여한 김영희(42·여)씨는 "온 가족이 함께 이외수 작가의 책을 읽는 오래 된 팬" 이라고 밝혔다.
"그의 글과 그림에서 삶의 위로를 얻어요. 가난과 고통을 이겨낸 이외수 작가의 삶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죠. 저에게는 종교보다 힘이 되는 것이 문학이에요"
대구에서 화천까지 먼 길을 직접 운전해온 장순옥(31·여) 씨는 "이외수씨의 글은 짧은 문장 안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문장은 발랄하지만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며 이를 '즐거운 계몽'이라고 표현했다. "카피라이터인 저보다 젊은 감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독자들의 열광에 대한 작가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소설보다 '이외수' 자체를 소비하는 것은 아닌가.
"작가로서의 순수성을 잃었다, 돈독이 올랐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알피니스트(등산가)가 계곡에서 놀면 순수성을 잃은 건가? 아니지 않나?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치열합니다. 다만 남은 여가에 논다는 생각으로 TV 출연 등을 하고 있어요.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는 것일 뿐이죠."
화천=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