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지역 문화공동체운동 펴는 사진작가 김지연 씨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0분


오늘은 영정 찍는 날…“그리움을 담아 드려요”

《무슨 잔칫날인가 싶었다. 오랜만에 날아갈 듯 한복을 차려입고, 미장원에서 손질한 듯한 머리에 눈썹 그리고 곱게 분 바른 할머니들. 한방에 모여 설레는 표정으로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수다와 웃음꽃이 피어났다. 마치 신부 대기실처럼….》

#꽃다운 청춘은 흘러가도

“똑바로 앞만 보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턱은 아래로 내리시고요.”

17일 오전 전북 진안군 마령면 주민자치센터. 월운마을에서 온 송봉순(76) 할머니는 환한 조명 아래 앉자마자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인 듯 사진가가 편하게 말을 건넨다. “베는 요즘 안 짜세요?” “허리가 짜그라져 3년 전부터 못해.”

굳은 얼굴이 어느덧 풀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셔터가 팍팍 터진다.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할머니는 대기실로 와선 한복 구겨질세라 옷부터 갈아입는다.

4형제 분가시킨 뒤 ‘영감님’(84)과 단둘이 사는 송 할머니. “화장 안 하다 하니까 추접스려. 안 그려?”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아주 고우시다”고 답하니 “이틀 전 머리 지지고, 오늘은 단골이라고 그냥 (머리랑 화장을) 해줬다”며 표정이 밝아진다. “글안해도 사진을 찍어야 할 틴데 걱정하다가 고모 얘기 듣고 따라왔어.”

같은 동네 사는 ‘고모뻘’ 송정임(72) 할머니도 사진 찍고 대기실로 왔다. 한마을에서 자라 한마을로 시집온 두 할머니. “사진 찍는다고 선생님 욕보신다”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간다. “나이 들어서 어서 가야 혀, 아파싸서…” “늙으면 가야지. 안 가서 죽것는디. 살 만치 살아서 안 슬퍼. 삼베옷도 해 놓은 지 한 5년 되나벼. 걱정스럽드니 해 놓은께 마음이 좋어.”

오늘은 영정 찍는 날. 덧없이 흘러간 꽃다운 시절을 눈물과 한숨이 아니라 허허로운 웃음으로 돌아보는 어르신들. 욕심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죽음은 허무한 종말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일 뿐이다.

#그리운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할머니 열한 분의 촬영을 마친 뒤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긴 김지연(60) 씨는 7월 한 달 영정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 전북도에서 받은 지원금은 장비 구입에 충당하고 사진 찍어 포토샵 작업하고 인화해 액자에 넣어드리는 일까지 전부 그의 몫이다. 지금까지 120여 명이 다녀갔다.

“영정은 누군가 서둘러 해주지 않는 한 본인 스스로 가서 찍기 힘들다. 자식도 차마 말 꺼내기 어렵고. 근데 정작 사진을 찍으러 온 분들은 즐거워하며 예쁘게 찍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마치 혼례청에 들어가는 묘한 기분’이라고 말하실 때 가슴이 찡했다. 죽음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순후한 마음을 배우고 있다.”

김 씨는 차로 5분 거리인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로 향했다. 폐업한 정미소를 사들인 뒤 2006년부터 지역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는 문화 공간(www.jungmiso.net)으로 꾸려 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한 작업이자 ‘정미소’ ‘나는 이발소에 간다’에 이어 그가 촬영한 ‘묏동’의 연장선장에 있다.

키 큰 옥수수 밭과 마주한 정미소에 들어서니 아직 작동하는 기계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그 한쪽에서 ‘진안군 졸업사진첩’전이 열리고 있다. “많이 걱정했다. 이 외진 곳에 누가 찾아올지. 텃세도 있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하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우리와 동떨어진 문화를 보여주며 너희 기분 충족시키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마을의 역사와 삶을 찾겠다는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 같다.”

누군가는 탈곡기를, 어떤 이는 써레나 홀태 같은 옛 농기구를 기증했다. 말없이 나무를 심어놓고 간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이 귀중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거창한 문화가 아닌, 마음에 스며드는 문화를 꿈꾸며 산다.

그는 주부로 살다가 쉰 즈음 카메라를 손에 잡았다. 치기인지 열망인지 고민했으나 ‘나를 찾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믿었고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했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사라져 가는 정미소를 찍기 시작했고 한 곳이라도 내가 보존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배가 고팠던 시절의 정미소, 나이 든 사람에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여기에 둥지를 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살아있는 사진을 만들고 싶었다.”

노후자금을 써 가며 홀로 동분서주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 앞으로 얼마나 버틸까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훌훌 털어버린다. “안 하는 것보다 나으면 하는 거다. 몸으로 때울 수 있는 한 버틸 거다. 힘들 때면 방명록을 읽어본다. 몇 명이라도 즐거움을 찾고 간다면 그것으로 위로받는다. 그래도 처음 생각보다 앞으로 많이 와 있는 것 같다.”

진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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