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앨범 낸다고 노래를 쉰 건 아니죠”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1분


결혼하고 방송은 ‘명퇴’ 당했지만 업소에선 날았어요

“20여 년 만에 낸 앨범이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이 될 줄 몰랐네요.”

올해 가수 생활 40주년을 맞이하는 정훈희는 마지막으로 앨범을 냈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나마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1979년 결혼한 김태화 씨와 테이프 A, B면에 나눠 부른 ‘우리는 하나’가 수록된 앨범. 그는 “1989년 즈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20년 공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요즘은 여자 연예인들이 재벌가로 시집가지 않는 한 활동을 계속 하잖아요. 당시엔 결혼하면 은퇴였어요. 앨범을 낼 수 없으니 전국을 휘저으며 밤업소를 다녔어요. 의정부에서 수원까지 하루저녁 다섯 군데 뛴 적도 있고요. 부르는 곳이 많아서 앙코르도 세 곡까지 하고 네 번째에선 냅다 (다른 업소로) 도망쳤죠.”

무엇보다 그가 앨범에 연연하지 않고 가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꽃밭에서’ ‘안개’ ‘무인도’ 등 여러 히트곡 덕분. 최근 만난 그는 농담 반으로 “그 곡들만 불러도 무대에서 밥 먹고 살 수 있어 솔직히 신곡이 고프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마음을 바꾼 건 작곡가 고 이영훈 씨 때문이었다. 이번 앨범에는 안타까운 뒷이야기가 있다. 이 씨는 가수들과 함께 만든 ‘옛사랑 플러스’ 앨범에서 정훈희가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른 것을 인연으로 정훈희의 40주년 기념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다. 하지만 이 씨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2월 별세했다. 그는 “정 선생님의 곡을 쓰기 위해 꼭 나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미완성된 5곡만 남기고 떠났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자 정훈희는 이번 40주년 기념 음반을 처음부터 다시 준비했다. 음반 타이틀도 ‘정훈희’. 타이틀곡이자 신곡 ‘삐삐코로랄라’를 비롯해 ‘안개’ ‘그 사람 바보야’ 등 재편곡한 이전 히트곡을 담았다. 또 인순이와 함께 부른 ‘노 러브’는 “두 디바가 꿍짝 해서 관객을 한번 뒤집어 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펑키 리듬의 곡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빼어난 고음과 미성은 이미 1960년대부터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1967년 ‘안개’로 데뷔한 그는 ‘도쿄 국제가요제’ ‘그리스 가요제’ ‘칠레 국제가요제’ 등 유난히 해외 가요제에서 상복이 많았다. 정훈희는 “한 음이 흔들려 안 되겠구나 했는데도 상을 주더라”라며 “한국 대중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에 공식은 없어요. 각자 룰대로 사는 거죠. 노래도 그래요. 2 더하기 2가 4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난 내 기준에서 정답에 가까운 노래를 한 가수가 아닌가 싶어요. 다시 태어나면? 당연히 가수해야지. 이 목소리 그대로 타고날 수만 있다면….”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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