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역으로 등장 90분간 폭소 한아름
막이 오른다. 잘생긴 투우사들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즐겁게 춤을 춘다. 한눈에 척 봐도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선술집 주인 로렌조가 등장해 무대를 휘젓는다. 뒤뚱거리는 사내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쿡쿡 웃음이 나온다.
발레 ‘돈키호테’가 시작됐다!
○ ABT의 대표 레퍼토리 ‘돈키호테’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영국 ‘로열 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ABT의 내한공연이 31일∼8월 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한국 무대는 12년 만이다. 다섯 번의 무대 중 첫날 공연(오프닝 갈라)을 제외하곤 네 번의 레퍼토리가 모두 ‘돈키호테’다. ‘돈키호테’는 ABT의 대표작이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처럼 국내 팬에게 익숙한 작품은 아니지만 발레를 잘 모르는 이들도 금세 푹 빠질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국 뉴욕에서 ABT의 발레 ‘돈키호테’를 본 무용칼럼니스트 정혜정 씨는 “이 작품은 초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빠른 전개로 ‘발레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준다”며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에도 좋다”고 ‘강추’했다.
○ 유쾌, 상쾌, 통쾌한 발레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바탕이 되긴 했지만 발레는 소설을 비켜간다.
발레의 주인공은 사랑을 나누는 선술집 주인의 딸 키트리와 이발사 바질리오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는 키트리와 바질리오의 동네를 지나가는 손님으로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발레에선 명백한 조연이 된 절묘한 비틀기다.
돈키호테가 이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헤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등 낯익은 소설의 에피소드들도 등장해 공연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무용평론가 유형종 씨는 발레 ‘돈키호테’의 매력을 ‘유쾌, 상쾌, 통쾌’라고 요약한다.
‘돈키호테’의 대중적 강점인 ‘코믹함’을 가리키는 얘기다. 실제로 90여 분의 무대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1막에서 키트리와 바질리오가 (관객이 보기에) 유치하고 귀여운 사랑싸움을 하는 장면, 호화롭게 갖춰 입었지만 멍청한 사내 가마슈에게 아버지 로렌조가 키트리를 시집보내겠다고 나서는 장면 등은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2막에서 사랑을 못 이룰 바엔 자살하겠다고 면도용 칼을 꺼내들 때 바질리오는 그 자신은 비장하지만 관객에겐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한다. 죽은 척하는 바질리오가 등장인물들 몰래(그러나 관객에겐 다 보이게) 키트리와 장난을 치는 장면에선 웃음바다가 된다.
이런 코믹함에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더해져 ‘돈키호테’는 90여 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다. 남녀의 사랑싸움 뒤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가 소란스럽게 등장하고, 축제가 벌어지는 도중 키트리와 바질리오가 몰래 도망치고, 연인의 뒤를 쫓던 돈키호테가 풍차를 괴물로 여기고 공격하는 등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지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또한 ‘돈키호테’만의 매력이다.
○ 한계에 도전하는 테크닉 발레
‘돈키호테’는 무용대회에서 여성무용수들이 많이 도전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만큼 테크닉이 화려하다.
세종대 장선희 교수는 “3막의 키트리 솔로 부분은 그야말로 넋을 잃게 하는 광경”이라면서 “손에 부채를 들고 32바퀴 푸에테(연속회전)를 하는 등 절묘하게 이어지는 기교에 박수가 절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랑 파드되(남녀 주역 무용수의 2인무)에서 키트리가 한 발로 오래 서 있을 때, 바질리오가 키트리를 한 손으로 들어올릴 때 오케스트라는 3, 4초 정도 음악을 멈춰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만큼 극의 재미뿐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장 교수는 “돈키호테는 흥겹고도 명랑한 스토리텔링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술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31일, 8월 1일 오후 8시, 8월 2일 오후 3시, 8시, 8월 3일 오후 4시. 오프닝 갈라 공연은 2만∼15만 원, 발레 ‘돈키호테’는 4만∼20만 원. 02-399-1114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주역 무용수 네 커플의 ‘4色 연기’▼
50바퀴 연속 회전… 공중 리프트…
골라보는 재미 ‘쏠쏠’
무용칼럼니스트 정혜정 씨는 “같은 내용이라도 주역무용수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해 해석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돈키호테’가 된다”고 말했다.
8월 1일(오후 8시) 공연하는 팔로마 에레라(33)와 앙헬 코레야(33)는 10년 동안 ‘돈키호테’의 키트리와 바질리오로 호흡을 맞춰온 커플. 그랑 파드되(남녀 주역무용수의 2인무) 중 공중에 떠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에레라를 단단하고 균형감 있게 붙잡아 주는 코레야의 동작은 ABT 내한공연 중 기대할 만한 볼거리로 꼽힌다.
시오라마 레예스(36)와 에르만 코르네호(27) 콤비(8월 2일 오후 3시)는 작지만 파워가 넘치는 커플이다. 레예스는 160cm에, 코르네호는 175cm에 못 미치지만 이 커플은 이 신체적 특징을 매력으로 바꿔 놓는다. 코르네호가 레예스를 들어올리는 ‘리프트 신’에서 레예스는 10초 동안 공중에 머무르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8월 2일 오후 8시 공연하는 질리언 머피(29)와 이선 스티펠(35)은 ABT가 매년 제작하는 달력에서 과감한 러브신을 선보일 만큼 외모가 돋보인다. 모델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갖춘 머피는 쉬지 않고 50바퀴 회전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정도다. 마지막 날인 8월 4일 오후 4시에 공연하는 미셸 와일스(28)와 데이비드 홀버그(26)는 ABT의 샛별로 꼽힌다. 와일스는 다이내믹하고 힘찬 움직임이 장기다. 웬만한 남자 무용수들은 체력적으로 와일스의 푸에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평. 와일스의 회전을 능숙하게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남성이 홀버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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