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의 심각한 훼손 상태를 실증적으로 밝힌 수묵화가 김호석 씨의 말이다. 그가 말하는 환자는 바로 반구대암각화다. 상태도 매우 위중하다.
그는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1971년 이후 올해까지 매년 사진을 찍어왔다. 인근 사연댐으로 인해 1년에 7∼8개월씩 물에 잠기는 국보의 훼손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 작업 과정에서 그는 암각화 중 고래 상어 호랑이 등의 그림이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간 사실을 밝혀내 22일 공개했다.
▶본보 23일자 A12면 참조
▶ 선사시대 유물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암각화 훼손 심각
김 씨가 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국보를 보존해야 할 문화재청이 암각화의 훼손 상태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은 2004∼2005년 3D 스캐닝으로 실측한 것을 제외하면 암각화를 정밀 촬영하거나 실측한 자료가 없다.
1971년 발견 이후 암각화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훼손됐는지 알 수 없었던 것도 김 씨의 자료처럼 시기별 훼손 상황을 비교할 실증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04년 이후 훼손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지만 그 이전 33년간은 ‘책임 방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암각화 관리 주체인 울산시 당국도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데이터로 기록된 것도 없어 심증에 따른 추정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안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 인식 때문에 암각화 보존 대책은 몇 년째 표류 중이다. 문화재청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울산시는 2020년까지 물 수요가 지금보다 약 1.5배 늘어나기 때문에 수위를 낮추면 식수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울산시의 물 수요 증가 예상은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도 암각화의 표면은 점점 더 떨어져 나가고 있다. 하루빨리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지 못하면 선사시대 대표문화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환자가 큰 병에 걸렸는데 병세를 진단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떤 옷을 입혀야 할지’로 의사들이 싸워요. 그러다가 환자가 죽어버리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김 씨의 호소다.
윤완준 문화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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