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몽골은 그들을 神으로 섬겼다

  • 입력 2008년 7월 26일 03시 03분


◇ 늑대 토템/장룽 지음·송하진 옮김/576쪽(1권), 592쪽·각권 1만2000원·김영사

형형한 눈빛, 날선 송곳니. 한밤을 가르는 통렬한 일성호가(一聲胡가). 그의 존재는 두려움을 넘어 경외에 가깝다. 하물며 양들은 배를 찢기는 순간까지 울음조차 놓지 못하리니.

늑대.

초원에서 그는 신(神)이다. 호랑이나 표범도 적수가 못 된다. 꺾이지 않는 강인함과 교활한 지혜. 대장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군율 체계와 잔인함까지. 그 때문에 몽골 유목민들은 늑대를 ‘탱그리(하늘신이나 자연신 정도로 해석됨)의 현신’으로 추앙한다.

베이징에서 온 ‘한족’ 지식청년 천전에겐 이 모든 게 신비했다. 네이멍구 자치구로 온 지 벌써 2년. 알 만큼 알았다 싶다가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농경민족인 한족에게 늑대는 유목민족인 몽골족만큼이나 묘한 존재였다. 그들의 삶, 그들의 사고방식. 광활한 초원 속에서 천전은 어느새 그들-늑대 혹은 몽골족-을 닮아가는 자신을 본다.

‘늑대 토템’은 영국 부커상을 주최하는 맨 그룹(Man group)이 아시아 문학 작품만을 대상으로 제정한 ‘맨 아시아 문학상’ 1회 수상작. 2006년 ‘랑’(동방미디어)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가 수상을 계기로 재출간됐다.

한족 출신인 작가가 문화대혁명 이듬해인 1967년(21세)부터 네이멍구 올론초원 농장에서 11년간 생활한 자전적 체험을 녹여냈다. 이 시간을 통해 작가는 몽골이 세계를 뒤흔들 수 있었던 힘의 뿌리가 ‘늑대 정신’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늑대 정신이란 다름 아닌 초원을 포효하는 육식동물의 마음이다. 먹이 앞에서 사흘 밤낮을 웅크리고 기다리는 인내,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걸 거는 결단, 그리고 사냥감이라고 완전히 몰살시키지 않는 관용. 늑대는 군림하되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초원에서 모두가 하나의 세상을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원민족이 지키려는 것은 큰 생명체이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과 자연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경민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작은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큰 생명체가 사라지면 작은 생명체도 전부 죽게 된다.”

‘늑대 토템’은 오랜만에 만나보는 ‘굵은’ 소설이다. 광활한 초원에서 꿈틀거리는 정열과 여유가 오롯하다. 순수한 풍광이 물씬한 생태 소설이면서, 뜨거운 전율이 넘실거리는 전쟁소설이다. 흰 늑대 무리가 자기보다 10배 이상 많은 가젤 떼를 사냥하는 대목이나 인간에 대한 복수로 군마를 몰살시키는 장면은 웬만한 스펙터클 영화보다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무지무지’ 재밌다. 거친 파도처럼 몰아쳤다 사그라지고, 밤하늘 별빛처럼 평온했다 끓어오르며 쉬이 넘어가는 대목이 없다. 몽골 관습이나 늑대 습성을 배우는 덤은 보너스. “초원의 바람을 가르는 늑대의 고귀한 영혼”이 이끄는 야성의 세계. 팽팽한 여름밤, 온몸의 잔털이 곧추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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