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8-07-28 03:012008년 7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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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풍속화의 가장 큰 특징은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것. 그는 빨래터, 저잣거리, 주막에서까지 화첩을 꺼내들 정도로 부지런했고 치열한 작가 의식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설도 제기된다. 서양 문물이 밀물처럼 들어오던 17, 18세기 조선에는 카메라의 일종인 옵스큐라가 들어와 있었다는 것. 김홍도가 과연 서양의 광학기구를 써서 그림을 그렸는지를 기록과 실험을 통해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