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은 없다”

  • 입력 2008년 7월 28일 03시 01분


세계여성철학자대회에 참석한 로지 브라이도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가운데)가 26일 이화여대 대학원관에서 이 대회 조직위원장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왼쪽)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전영한 기자
세계여성철학자대회에 참석한 로지 브라이도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가운데)가 26일 이화여대 대학원관에서 이 대회 조직위원장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왼쪽)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전영한 기자
세계여성철학자 서울대회 참석 브라이도티 교수

《“국가 경계를 뛰어넘은 이주로 수많은 타자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지배 가치는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 가치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넘나드는 노마디즘(nomadism·유목주의)은 그동안 소외된 타자에 머물렀던 여성의 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27일 이화여대에서 개막한 13회 세계여성철학자대회에 참석한 로지 브라이도티(54)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가 26일 이현재(39)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와 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이 대회 조직위원장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가 함께했다. 2,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처음 열렸으며 29일 폐막한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정신을 일컫는 유목주의를 여성주의철학에 접목시킨 ‘유목적 주체’(1994) ‘트랜스포지션’(2006)으로 유명한 학자. ‘유목적 주체’는 2004년 국내에 번역 출간돼 한국 여성주의 철학계에 영향을 끼쳤다.

▽이현재=‘유목적 주체’로서 여성은 기존 여성주의 철학의 여성과 어떻게 다른가.

▽브라이도티=여성주의철학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하고 남성과 다른 여성의 권리와 정체성을 쟁취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전개돼 왔다. 남성에 대비된 여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만 매몰돼 온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여성이라도 흑인 백인 아시아인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 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여성을 ‘다층적 상황에서 다양한 실천을 하는 행위자(agency)’로 봐야 한다. 나도 대학에서 ‘여교수’지만 집에서 아이의 ‘엄마’다. 상황에 따라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은 달라진다.

▽이=유목주의와 결합된 여성주의는 현실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나.

▽브라이도티=여성은 ‘고정된 채 생각하는 주체’에서 ‘다양하게 행동하는 주체’로 변모할 수 있다. 한국 여성은 여성 권리라는 면에서 일본 여성과 연대하다가 독도 문제라는 역사적 왜곡에서는 다른 국가 여성과 연대할 수 있다. 동남아 이주 여성에 대한 인종 차별 등에서 다양한 실천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

▽이=이와 관련해 당신은 “몸을 변형시킬 때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라이도티=‘몸의 변형’은 성형에 의한 변화는 아니다. 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지적 문화적 경험과 기억이 응축된 개념이다. 나와 타자의 몸은 분리돼 있으나 사회 경험을 공유한다. 동남아 이주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뛰어들면 자신이 이주 여성이 아니라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다. 구체적 행위를 통해 타인을 인정하는 과정이 ‘몸의 변형’이다.

▽이=한국은 성매매특별법을 시행한 뒤 성매매 여성들이 노동권과 몸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시위했다.

▽브라이도티=성매매를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만 보는 것은 ‘고정된’ 정체성이다. 유럽에서는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아시아 여성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 유럽으로 이주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다. 무조건 성매매를 없애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매매 여성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성을 사는 남성의 문제를 고민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