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늘리고 접근성 해결… 건축 신도시에 새 생명을”

  • 입력 2008년 7월 30일 02시 58분


파주출판도시, 2단계 사업엔 뭘 담을까

“시공을 이렇게 급하게 마쳐야 한다면, 건물 설계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지워야죠.”

18일 오후 경기 파주출판도시. 신축공사가 마무리된 건물 앞에서 건축가 승효상(56·이로재 대표) 씨가 건축주에게 창호 마감 등 잘못 시공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건축주는 승 씨의 설명에 “즉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낯선 광경이다. 아무리 명망 높은 건축가의 요청이라지만 공사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축주가 흔쾌히 보강공사를 결정한 것.

파주출판도시는 이런 식으로 한 땀 한 땀 한국 건축계의 관행을 바꿔 가며 탄생했다.

○ 9월 개막 伊비엔날레 한국관 주제로

9월 개막하는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의 한국관 주제가 파주출판도시로 정해진 것도 건물 각각의 디자인보다 ‘과정의 변화’에 더 큰 의의를 두었기 때문이다.

서울을 벗어나 서북쪽으로 자유로를 타고 20km쯤 달리다가 파주출판도시로 진입하면 유럽의 한적한 소도시에 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2∼5층 높이로 키를 맞춘 건물 250여 채가 87만 m² 용지 중앙을 가른 왕복 4차로 직선도로 양쪽에 줄지어 서 있다. 규모와 배치, 재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 비슷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서로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서혜림 김준성 씨의 ‘열린책들’처럼 직육면체 형태를 지양하고 여러 겹의 레이어를 불규칙하게 겹쳐 쌓은 건물이 있는가 하면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돌베개’처럼 복잡한 형태 변화를 자제하고 입면의 창문 배열만으로 건물 표정을 맵시 있게 살린 작품도 있다.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의 ‘도서출판 보리’는 측벽이 바닥으로 둥글게 휘어 들어가는 디자인으로 건축주의 역동적 이상을 표현했다.

출판인들이 처음 뜻을 모아 책 만드는 도시를 만들기로 한 것은 1989년. 이들의 의뢰를 받은 30여 명의 건축가가 출판 공동체의 탄생에 참여했다. 2007년 5월 1단계 건설사업이 마무리됐고 지금은 영화산업을 위한 2단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어디에서 봐도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는 멋진 건물들. 보기만큼 쓰기에도 좋을까.

홍지웅(54) 열린책들 대표는 “건축물은 책과 달리 개인이 독점할 수 없는 공공재”라며 “길 하나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도시 전체의 풍경이 바뀌듯 이곳 건축물들이 많은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 개성 강한 디자인… 불편한 점 보완을

하지만 공간 디자인을 인정하면서도 불편한 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한 여성 디자이너는 “조경이 부족해 점심 식사 후 잠깐 기대어 쉴 만한 나무그늘이 없어 삭막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자가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은 데 비해 주차 시설이 너무 적다는 말도 있었다.

출판도시 계획에 참여한 민현식(62)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건축가들이 개별 건물 짓기에 몰두하다가 외부 환경 조성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2차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출판도시는 산업적 기능과 수준 높은 공간 디자인을 함께 추구했지만 좀 더 생기 있는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보완할 부분이 있다. 출판 테마에 어울리는 상업 지구를 형성해 도시다운 여백을 갖춰야 하며 본래 계획대로 습지 식물 위주의 조경도 확대해야 한다. 접근성에 대한 입주자들의 고민을 해결할 방안도 필요하다.

건축평론가 배형민(47)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파주출판도시는 맹목적인 개발에서 벗어나 문화생활의 터전이 되는 도시의 가능성을 짚어냈다”며 “이 과정에서 얻은 것과 실패한 것에 대한 논의가 비엔날레를 계기로 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파주=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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