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조각가이자 딸아이의 엄마인 선생님 한 분을 사석에서 만났는데 그 분 역시 딸이 장래에 미술작가로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은 특이하게도 그림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딸에게 남들이 다 하는 미술관 전시 관람보다도 자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국내 여행을 하도록 방학 계획을 짰다는 것이다.
대다수 학부형들이 열에 아홉이 미술관 전시 관람을 방학 계획에 넣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 독특한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지금 이 칼럼을 읽는다면, 큐레이터로서의 필자의 생각을 자못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장래에 미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자연으로부터 얻게 되는 경험이나 감동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연은 그들이 커서 그것을 화폭에 옮기거나, 또는 다른 모양으로 변형시킬 때 언제나 바탕이 된다.
하지만 필자의 이 생각이 자연의 직접적인 경험을 미술관의 전시 관람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에 자녀가 전문적인 미술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필자는 오히려 미술관 전시 관람을 더 추천할 것이다.
1959년부터 10년 동안 프랑스 문화성의 초대 장관을 역임한 앙드레 말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음악가는 음악을 사랑하고 종달새를 사랑하지 않으며, 시인은 시를 사랑하고 저녁노을을 사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가도 사람의 얼굴이나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말로의 이 말은 미술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자연의 경험을 하찮게 생각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화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가 모방해야 하는 대상은 자연보다도 거장이나 스승의 그림이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작품은 자연을 보고 난 뒤 번뜩이는 영감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모방 후에 따라 나오는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 자녀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거나, 또는 장래에 미술작가가 되기를 꿈꾼다면 미술관 전시 관람은 필수적인 학습과정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관련기사]영감을 일깨우는 주문 ‘수요일엔 레드 와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