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대회 개막]달마이어-윤평중 교수 특별 대담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4분


전영한 기자
전영한 기자
《서울대에서 30일∼8월 5일 열리는 세계철학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분야는 ‘전체 강연(Plenary Session)’이다. 세계 철학계를 대표하는 석학 12명이 정치철학, 현상학 등을 주제로 발표한다. 31일 오전 이 세션의 첫 강연자로 정치철학의 대가인 프레드 달마이어 미국 노터데임대 석좌교수가 나선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달마이어 교수를 만나 참여민주주의, 정치와 철학의 관계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윤평중=일반적으로 철학과 정치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철학이 이상적 당위를 다루는 반면 정치는 냉정한 현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철학과 정치의 비판적 만남’을 강조합니다.

▽달마이어=당위와 현실의 구분은 신칸트주의 사상가들의 허구에 불과합니다. 정치는 삶의 문제들을 성찰적인 방식으로 해명하는 철학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역으로 철학은 일상적 현안에 주목하는 정치로부터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철학은 세계의 실상을 반성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철학은 본성상 비판적이며, 어느 정도는 실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윤=교수님은 정치 공동체, 현대 민주주의론, 정치적 주체 형성 등의 주제를 평생 천착하고 계십니다. 한국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진보 진영에선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하는 데 비해 보수 세력은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면서 공론장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달마이어=원론적으로 말하면 시민들이 삶의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건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정치적 주체 역할을 하는 걸 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간디주의자로서 저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집회와 사회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저는 실천철학으로서 정치철학을 신봉하지만 이때의 실천은 생각 없는 행동주의가 아니라 사려 깊은 성찰적 실천을 의미합니다.

▽윤=전문화가 심화되는 현대 철학계에선 고전적 의미의 보편사상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유럽적 사유와 영미적 학풍을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인도, 동아시아 사상과도 꾸준히 대화를 해왔습니다. 다양한 문명의 차이와 사유 방식의 이질성을 녹여내 현대 실천철학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달마이어=세계화는 장점도 있지만 위험을 수반합니다. ‘문명 충돌’이나 ‘테러’의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는데 오늘 같은 핵 확산시대에 그것은 순식간에 전 지구적 참사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은 ‘문명 간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 문명 사이의 대화는 ‘차이’와 ‘타자’에 대해 존중과 경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서구와 이슬람권의 문명 충돌은 사실상 ‘무지의 충돌’입니다. 서로 부단히 대화하고 배워야 이런 무지와 오해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윤=민주화와 산업화를 한 세대 만에 성취한 한국인들은 이제 부와 권력을 향한 집합적 질주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천민자본주의는 시민들의 내적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위협합니다. 또 소용돌이의 정치는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면서 사는 걸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달마이어=민주주의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자기 지배로 정의되는데, 여기서 지배란 결코 이기적 이해의 추구가 아닙니다. 자기 지배는 오히려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중의 자기 통제를 뜻합니다. 민중은 정치적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절제와 자기 변혁을 추구하는 윤리적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와 윤리의 불가분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윤리적 삶의 배양, 나날의 노동과 일상에의 몰입에서 발견되는 ‘작은 놀라움’의 축적이 성숙한 민주주의와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윤=세계철학대회의 주제가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입니다. 100개가 넘는 국가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회 사상 최초로 유불선(儒佛仙) 사상을 다루는 분과 모임이 만들어져 동아시아적 사유가 세계 철학계에서 ‘학문적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얻는다는 의의도 있습니다. 한국의 사상가인 함석헌, 유영모를 논의하는 특별 모임도 열립니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캠프’나 ‘학생 발표회’를 통해 철학 전문가와 시민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실험도 합니다.

▽달마이어=이번 대회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대회 주제는 긴급하고도 적절한 것입니다. 철학적 사유와 구체적인 삶의 경험이 끊임없이 상호 침투하면서 오늘날 삶의 조건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감안한다면 철학의 기본 전제 및 가정에 대해 재점검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입니다. 서울 대회는 서로 다른 문화와 사유체계가 어울리면서 현대 철학의 지평을 넓히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리=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프레드 달마이어 미국 노터데임대 석좌교수

△미국 듀크대 박사 △독일 함부르크대 초빙교수, 영국 뉴필드칼리지 펠로 △저서 ‘또 다른 하이데거’ ‘문명 간의 대화-몇몇 대표적 입장들’ ‘세계화와 불평등-세계정의를 위한 탄원’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 △한국철학회 편집위원,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저서 ‘포스트주의와 권력 비판’ ‘논쟁과 담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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