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정간물 172개 등록취소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주·월간지 등 172개 등록 취소.’

1980년 7월 31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는 문화공보부가 172개 정기간행물의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문공부는 ‘사회 정화’ 차원에서 주간 월간 계간지 등 172개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당시엔 월간지 771개를 비롯해 △계간지 225개 △연간지 167개 △격월간지 150개 △주간지 121개 등 모두 1434종의 정기간행물이 문공부에 등록돼 있었다. 일간지와 통신을 제외한 전체 정기간행물 가운데 12%를 등록 취소한 것이었다.

여기엔 함석헌 씨가 발행인인 ‘씨ㅱ의 소리’를 비롯해 ‘뿌리 깊은 나무’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 당시 신군부에게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정권 비판 간행물이 포함돼 있었다. 서강대(서강타임스) 한양대(한양타임스) 세종대(세종헤럴드) 인하대(인하헤럴드) 동덕여대(동대학보) 등에서 발간하는 대학 간행물도 등록이 취소됐다. 물론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음란 퇴폐 잡지도 대부분 포함됐다.

문공부는 이들 간행물이 △각종 비위나 부정 부조리 등 사회적 부패 요인이 돼오거나 △음란 저속 외설적 내용으로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에 유해한 내용을 게재했으며 △계급의식의 격화 조장 및 사회 불안을 조성해왔거나 △발행 목적을 위반했거나 법정 발행실적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문공부는 모든 정기간행물 발행인들에게 공문을 발송했다. 앞으로 기사를 빙자한 금품 요구나 광고 강매, 공갈 등 비위와 부조리 및 선량한 국민이나 기업을 괴롭히는 일체의 요인을 스스로 개선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문공부 조치는 사이비 기자를 단속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간행물의 범람을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정권에 비판적인 간행물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에서 언론 탄압이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 서슬 퍼런 1980년 신군부 언론정책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1980년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언론 자유가 만개한 요즘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인터넷 언론의 폐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대목이다.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인터넷 매체에서 기업의 약점을 잡아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광고와 금품을 요구해 곤혹스럽다는 게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최근 이물질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 식품업계에선 블랙컨슈머 못지않게 인터넷 언론의 등쌀에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오랫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한 L 씨는 “‘포털에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돈을 뜯어내려는 인터넷 매체들을 접하면 말문이 막히더라”면서 “기업에 와서 일하면서 기자 생활을 할 때 깨닫지 못한 인터넷 언론의 폐해를 체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즘 기업들은 사이비 인터넷 언론에 대응하느라 지쳐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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