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독자가 동아일보에 전화를 했습니다.
50대 주부라는 이 독자는 전화를 받은 기자의 신원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울먹였습니다. 그리고는 기자에게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등 미국과 미국산 쇠고기, 정부와 보수언론 등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마구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두어 달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독자의 전화가 말해 주듯 온 나라를 덮친 촛불시위의 광풍은 가정에까지 몰아쳤습니다.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미친 바람’은 동아일보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동아미디어센터는 네 번이나 과격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유리 건물인 미디어센터의 1층 회전문과 대형 유리창, 건물 옆의 신문게시판이 파괴됐습니다.
과격 시위대는 동아일보 사기(社旗)를 끌어내려 찢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단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던 깃발입니다. 동아일보 광고주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수법까지 등장했습니다. 군사독재 때나 쓰던 수법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피해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정권부터 동아일보는 한결같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제기준에 근거해서 풀어야 한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동아일보가 노무현 정권 때는 광우병 위험을 비판하더니 새 정부 들어와서는 논조를 바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일부 방송과 군소 신문 등도 동아일보를 공격했습니다.
유언비어는 잘못된 믿음을 낳았습니다. 일부 과격시위대의 소행이기는 하지만 급기야 동아일보 기자가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빚어졌습니다. 6월 26일 밤 과격 시위대는 종로구 신문로에서 취재하던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를 넘어뜨린 뒤 짓밟았습니다.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까지 끌려가며 폭행당한 변 기자는 카메라까지 빼앗긴 채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 실신했습니다. 변 기자는 병원에서 “몸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광우병 쇠고기’로 믿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시류에 밀려 펜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MBC ‘PD수첩’의 악의적인 왜곡과 오역, 인터넷 괴담, 편향된 교육 등에 의해 촉발됐다는 사실을 주도적으로, 깊이 있게 보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단순히 괴담에서 나온 것이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영원히,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7월 29일 검찰의 PD수첩 관련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촉발한 PD수첩 보도의 상식을 벗어난 수많은 문제점이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동아일보는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권은 어떤 언론매체보다 소중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엔 비판의 선봉에 설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이 진실을 호도하고, 괴담이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두려움 없이 나설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동아일보에는 많은 독자들이 격려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물질적인 지원보다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저희 동아일보 지면을 봐주시는 게 우리의 힘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진실 추구를 향해 용기 있게 나가겠습니다.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가 창간호를 낸 그날부터 오늘까지 바로 독자 여러분이 있기에 동아일보가 있습니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