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에 가면 연예인들 만나고, 영화 시사회에 가고, 공연도 실컷 볼 수 있겠지.’
내가 아무리 동아일보 9기 대학생 인턴기자 중 막내라지만 이런 철없는 생각만 가지고 문화부를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럴 수가! 막연한 기대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영화 ‘놈놈놈’의 개봉을 앞두고 이병헌 단독 인터뷰에 동행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영화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시 왓 아이 워너 시(See what I wanna see)’, ‘쓰릴 미(Thrill me)’ 등 뮤지컬 대작을 관람할 기회도 얻었다.
그뿐 아니다. 소설가 허수정과 시인 김경주 인터뷰, 문학관 취재, 서평 쓰기 등을 통해 그동안의 문화 갈증을 단 몇 주 만에 해소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다. 취재에 앞서 많은 사전조사를 해야 했고, 현장에서의 긴장감과 기사를 쓸 때의 초조함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했다.
동아일보의 인턴기자 생활을 하며 잃은 것이 많다. 먼저 시간이 손 안의 모래알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 외에도 여러 과제와 회식 등으로 인해 자유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친구도 빼앗아갔다. 방학인데도 친구들을 만나기는커녕 연락마저 뚝 끊겼다. 또 몸은 피곤한데 일은 계속 밀려드니 저절로 예민해지고 시니컬해졌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배부르다. 선배들과 함께 한 광화문의 ‘맛집 탐험’ 때문만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내게서 빼앗아간 것의 몇 곱절을 되돌려줬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몇 년이 걸려도 알 수 없었을 취재, 정보검색, 기사쓰기 요령 등을 며칠 만에 알아가는 뿌듯함이란….
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 정말 귀한 22명의 동기를 선물받았다. 성격은 까칠해졌지만 그만큼 사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아마 인턴 기간이 끝나면 잃어버린 많은 것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동아일보 선배, 동기들과 함께한 시간만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인턴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진실과 믿음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믿음이 없는 진실은 공허하고, 진실이 없는 믿음은 요란하다.
복잡한 진실의 넝쿨을 파헤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동아일보 기자들. 이런 선배의 모습이 오늘도 나를 배고프게 만든다.
손지니 인턴기자(서울대 영어영문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