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좌파의 몰락’을 생각함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변광배 옮김/460쪽·1만8000원·프로네시스

“좌파에 대한 환멸, 좌파가 가진 꿈의 세속화,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모든 정치적 수정들…. 우리는 좌파가 불 없이 연기만 피우면서, 물 없이 거품만 내면서, 말없이 급진적인 행동을 하면서, 전체주의적인 20세기를 벗어났지만 21세기에 진입하지 못하고, 좌파가 두 세계(20세기와 21세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 있다.”

1977년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통해 스탈린 독재와 집단수용소의 존재를 묵인한 서구 좌파를 통렬히 비판해 논쟁을 일으켰던 프랑스의 지성 베르나르 앙리 레비.

그가 30년 만에 ‘나자빠진 시체’ 취급을 당하는 좌파의 몰락을 애도하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의 원제는 ‘나자빠진 거대한 시체(Ce Grand Cadavre `a la Renverse)’다.

이 책은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지지를 호소한 니콜라 사르코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왜 좌파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에게 투표를 했는지에 대한 변이다.

그러나 그는 “사르코지가 전화로 좌파는 지지부진한 모습으로 쇠락의 상태에 있음을 조롱했을 때, 그 비판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 화가 났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르코지는 모든 사유(思惟)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해 오히려 정체성을 잃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프랑스의 뿌리 깊은 좌파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그 유산을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드레퓌스 사건의 인권수호 정신, 비시정부의 반(反)파시즘 교훈, 알제리전쟁에서의 반(反)식민주의 운동, 68혁명의 반권위주의 저항 등 ‘기억과 사유 및 역사 속에서 각인된 지식의 덩어리로서의 반사작용’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의 독설은 지구촌의 이슈로도 확대된다. 미국 혹은 제국주의가 세계의 모든 악의 원천이라는 반미 또는 반제국주의자의 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수단 다르푸르 인종학살 등 ‘비극은 그 지역 주체들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불간섭주의도 배격한다.

반미·반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슬람근본주의자들과 한 배를 탄 좌파의 위험한 동거도 지적하며, 종교와 정치가 혼합된 또 다른 전체주의인 ‘파쇼 이슬람주의’도 경계해야 좌파가 거듭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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