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종 25년(974년). 김일은 사형장에 섰다. 불교계는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풍류계 거봉이란 호칭도 눈꼴 시린데 이계(異界)까지 다녀왔다니. 문제는 실제로 그가 서경에서 진주조개를 닮은 요상한 비행체에 타는 것을 많은 이들이 봤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김일은 그 증거로 신체는 물론 내장 좌우가 역전됐다고 주장했다.
능지처참. 산 채로 온몸의 살점을 뜯어내는 형벌. 불교계와 왕실을 매도한 그에겐 딱 맞춤이었다. 하지만 처형을 집도한 승려들은 사색이 되고 마는데…. 진짜로 김일의 내장은 좌우가 뒤바뀌어 있었다.
‘풍류왕 김가기’는 희한한 소설이다. 저자부터 범상치 않다. 공학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를 담당했던 이력. 전작인 소설 ‘반인간’(책세상·2003년)만 봐도 다이어트를 매개로 동양의학의 허실을 공격하는 독특함이 물씬하다. 그런 작가가 이번엔 미확인비행물체(UFO)와 풍류도란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얕봤다간 낭패를 당한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이문열 씨의 말처럼 “과학적 해석, 다른 우주의 존재 여부, 불교와 기독교의 근원적 문제점같이 심각한 주제들을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풍류인들이 심취했다는 수학이나 과학의 수준은 꽤 깊이가 있다.
제목에도 등장한 김가기(?∼859)는 중국 당나라 종남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신라시대 학자. 여기서 풍류는 신라시대 화랑도로 대표되는 유(儒) 불(佛) 선(仙) 사상을 포괄한 한국 고유의 사상을 뜻한다. 김가기는 자신이 예언한 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소설은 직계 후손인 고려시대 인물 김욱이 그 백일승천(白日昇天)의 진실을 좇는 구조를 취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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