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 보고 싶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하얀 연기도, 주전자에서 흐르는 물도 모두 솜이다. 풍경을 솜으로 그려내는 낯선 시도에 대해 작가는 설명한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솜틀집을 운영하셨다. 반평생 동안 오직 솜만을 틀어서 모든 생활을 유지해 왔고, 4형제를 키워 내셨다. 가끔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문득 떠올릴 때면 솜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아버지의 삶은 솜틀집이었고, 아버지는 솜이요, 솜은 곧 아버지였다. 나는 솜을 먹고 자랐다.”
경기 고양시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과 상상-그 뜻밖의 만남’(10월 5일까지)에 전시된 노동식의 작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솜이 지닌 포근한 상상력에 빠져들게 한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표현한 18명 작가의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50여 점을 선보인 전시를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사물이나 풍경으로 바라보는 자유와 즐거움을 배운다.
이곳에서 가까운 어울림미술관에서는 최승준의 ‘그림자가 따라와요’전이 24일까지 이어진다. 관객들이 직접 작품과 소통하는 미디어 아트 체험전. 안으로 들어가면 빛을 활용해 내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이 그림자는 전시장 곳곳에서 나를 반겨준다. ‘그림자놀이’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은 어른에겐 향수를, 어린이에겐 흥겹게 몸을 움직이며 감상할 기회를 준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잔다리 갤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리는 ‘별 꼴이 반쪽’전도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만한 전시다. 전시 제목은 작품이 반쪽의 별이며 관람객이 나머지 반쪽을 채운다는 뜻. 손뼉을 치면 스크린에 외계인 얼굴이 나타나는 정연현의 작품을 비롯해 김다영 이정배 이연배 등의 작업은 우주로의 휴가를 제안한다.
방학을 맞아 어린이 친화적인 현대미술 전시가 여기저기서 한창이다. 바다를 테마로 한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의 어린이특별전 ‘미술이 만난 바다’(9월 15일까지), 26명의 작가가 시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마법의 세계를 연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전(23일까지),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을 일러주는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2008 미술과 놀이-놀이의 방법’(24일까지) 등. 현대미술이란 미지의 영역을 가족이 함께 탐험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 기회로 삼을 만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아이들과 전시장에 갈 때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현대미술에서 작품 감상은 어디까지나 관람객의 몫. 작가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잘못된 감상법은 아니다. 지나친 주입식 설명은 피하고, 아이들이 전시 자체를 자유롭게 즐기고 집중할 수 있도록 북돋워준다.
▽아이의 집중 시간을 고려한다=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버린다. 아이가 흥미를 갖는 작품을 충분히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에서는 무엇을 그렸는지 관찰하고 형태, 색채, 구성을살펴본다.
끝으로 작가가 왜 이렇게 그렸는지, 주제나 의도를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가르치기보다 질문한다=어린이는 어른이 못 보는 것을 본다. 부모가 찾아내지 못한 부분을 찾아냈을 때 칭찬하라. ‘저것은 무엇처럼 보이니?’라고 물은 다음, 아이 스스로 관찰하게 한다. 어떤 대답이든 귀 기울여 듣고 일단 맞장구를 쳐준 뒤 의견을 말한다.
▽전시는 함께 본다=작품 감상의 모든 순간을 ‘아이와 더불어’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을 보면서 대화도 풍성해지고 유대감도 깊어진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말로 하는 것과 글로 적어 보는 것은 다르다.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왜 그랬는지 등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면 훗날 추억이 된다.
(도움말=아람미술관 큐레이터 여운희, 도슨트 이미연,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황정인, 갤러리 잔다리 큐레이터 송희정 김민아)
#즐겨라-새로운 생각과의 만남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화가 폴 호건)
미술가는 우리가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며, 전시장은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만나는 곳이다. 동시대와 사회
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현대미술이란 점에서 작품 감상의 ‘정답’에 대한 부담을 떨치면 누구든 쉽게 다가설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보는대로의 즐거움에 빠져 보자. 좋아하는 작품을 발견하고, 그 느낌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자체가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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