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없이 시간외수당… 1명에 한해 1871만원 주기도
■ 감사원이 밝힌 KBS 부실-방만 경영 사례
《감사원은 5일 KBS 감사결과를 통해 KBS의 부실 경영을 총체적으로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 총평에서 “정연주 사장이 취임한 이래 KBS는 경영구조가 악화되고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되는 등 성장과 발전을 위한 변화의 동력을 얻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정 사장에 대해 “공영방송으로 수익성 추구에 한계가 있고 수신료도 동결된 상황에서 과다한 지출예산 편성과 조직·인력의 방만한 운영으로 KBS를 만성적인 적자 구조로 고착시켰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배경에 대해 “KBS에 대해 2004년 이후 감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KBS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에 대한 사회의 문제 제기가 있어 감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감사원이 밝힌 KBS의 부실·방만 경영 사례들이다.》
1.예상 수입 부풀려 지출 ‘펑펑’
KBS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인 1998년에 58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보였지만 이후 2003년까지 매년 228억 원에서 1032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정 사장 취임 이후인 2004년 3월부터 2007년까지는 1172억 원의 누적 사업손실(법인세 환급액 등을 제외한 사업상 손실)을 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광고수입을 근거로 지출예산을 과다하게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BS는 2004∼2008년 사장이 의장인 경영회의 등에서 객관적인 근거 없이 광고수입 예산을 광고팀 예측보다 2663억 원이나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실현 불가능한 수준으로 다음해 광고 수입 예산을 책정하기도 해 2004∼2007년 수입결손액은 2773억 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정 사장이 2007년 4월과 8월 광고수입이 2006년에 비해 대폭 감소(상반기 기준 449억 원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흑자경영이 수신료 인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사회의 수입 증대 대책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사회가 수입예산 과다 편성 문제를 계속 지적했지만 정 사장은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2007년 KBS 광고수입은 5931억 원으로 전년 대비 743억 원 감소했다.
2.인건비 운용도 방만
KBS는 2005년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라 감소된 임금을 보건후생비 인상을 통해 보전해주고도 동일한 명분으로 ‘조정 수당’을 신설하는 등 각종 수당 인상과 신설을 통해 인건비를 사실상 이중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KBS는 인건비를 2004∼2006년 정부투자기관 인건비 기준인상률 7%보다 2배 높은 15.29%나 인상해 206억 원을 추가로 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디지털방송 전환을 위한 투자 확대 등으로 사업성 경비(전체의 45%)를 줄이기 곤란하므로 인건비성 경비(전체의 36%)를 줄이는 것이 유효한 대책인데도 구조조정, 임금동결 등의 노력 대신 인건비성 경비를 편법 인상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 출입 기록 등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시간외수당을 지급해 지침상 지급 한도인 연 432만 원을 초과해 지급한 사례도 적발됐다. 2006년엔 직원의 31.5%인 1522명이, 2007년에는 직원의 37.5%인 1831명이 지급한도 이상을 받아갔고 이 중 192명은 시간외수당이 1000만 원을 넘었다. 1871만 원을 시간외수당으로 받아간 사람도 있었다.
3.법인세 환급 소송 졸속·부당 처리
KBS는 1999년 국세청을 상대로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내 2004년 8월 행정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런데도 2005년 8월 국세청과 협의해 ‘자진 납부한 법인세의 환급을 포기한다’는 조정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해 합의했다. 이 때문에 1996∼2004년 자진 납부한 법인세 816억 원을 돌려 달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감사원은 KBS와 국세청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법인세 납부방법(광고수입 금액에 비례해 공통비용을 안분)으로 1996∼2004년 법인세를 재산정한 결과 514억 원을 추가환급 받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2005년 4월 당시 KBS는 그해 814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2005년에 적자가 발생하면 경영진이 4분기 내에 책임을 진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정 사장은 당해연도 적자를 피하기 위해 국세청과 서둘러 합의하고 환급금도 일부만 받아내 결국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법인세 환급 소송의 조기 종결 방침 등에 대해 방송법 49조와 KBS 정관 13조 규정에 따라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하는데도 이사회에 형식적인 사후 보고만 했다.
4.공공기관 중 퇴직금누진제 유일하게 유지
KBS는 2002년과 2004년 감사원 감사에서 폐지하라는 통보를 받고도 퇴직금누진제를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어느 공공기관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퇴직금 누진제를 KBS가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장·본부장 등에 대해선 2.5∼3.5배의 누진율을 적용해 단수제와 비교할 때 약 20억 원을 과다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대학생학자금 편법 지원
감사원은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에 대해 감사를 통해 이미 3차례나 지적했지만 KBS는 여전히 이를 고치지 않았다. 대학생 자녀 학자금은 융자로 전환해야 하지만 KBS는 상환시기가 도래한 무상대여 학자금을 ‘장학금’이란 명분으로 지급해 238억 원의 무상지원을 계속했다.
KBS는 특히 2004년 7월 학자금 무상지원제도를 편법으로 운영하면서도 감사원에는 ‘2003년 이후 융자제도로 전환했고 앞으로도 대여방침을 준수할 것’이라고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
6.과도한 유급 휴가
2003년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휴가 종류와 기간 등을 축소해야 하는데도 연차휴가 외에 청원휴가(13종 47일), 보건휴가, 장기근속휴가 등 과도한 유급 휴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차 휴가 사용을 독려하지 않아 연차 휴가 사용 비율이 2.4%에 불과해 매년 228억 원의 연차휴가 보상비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상위직 인력 과다 운용
정 사장 취임 후 팀장에 보임될 수 있는 2직급 이상 비율이 2003년 12월 현재 전체의 40.5%에서 2008년 7월 현재 48.2%로 증가하는 등 상위직이 과다한 기형적 조직구조가 심화됐다.
정 사장은 일반직 전 직원을 2직급(갑)까지 근속 승진시키는 제도를 유지한 채 2004년 8월 직제를 팀제로 개편하면서 2직급(을)까지 팀장에 보임할 수 있도록 해 상위직이 늘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8.상위직 유휴 인력 과다 운용
KBS는 2004년 직제를 팀제로 개편한 뒤 차장급 이상 직위 1198개를 팀장 등 185개(현 203개)로 줄였다. 그러나 이번 감사에서 해설위원실 등 5개 팀 소속 관리직에 대해 업무 실적을 살펴본 결과 실적이 미미하거나 실무 인력 증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심의실 TV심의위원 19명의 하루 심의량은 방송시간으로 86분 분량에 불과했고 재원관리팀의 수신료 징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2직급 이상 10명 중 5명은 연간 품의(稟議) 실적이 전혀 없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m
▼요건 미달자 20명 국장으로 특별승격 ‘인사 전횡’▼
694명 인력감축 요인 발생했지만 조치 안해
효과없는 중계소 이전 강행 예산 74억 낭비
9.징계 형평성 미비
사규 등에 따라 예산을 횡령한 직원은 모두 고발 조치해야 하는데도 정 사장은 특정 인사에 대해서는 묵인할 것을 지시하는 등 징계 과정에서 형평성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작가들에게 원고료 1700만 원을 부당·과다 지급한 뒤 790만 원을 돌려받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정 사장은 2007년 3월 고발하지 말라고 지시해 유사한 사례로 적발된 다른 직원을 모두 사규에 따라 고발 조치한 것에 비해 형평성을 잃었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또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서도 특정 직원은 불문에 부쳤으나 다른 직원에게는 경고 또는 견책 조치를 내리는 등 특정 사안의 징계 과정에서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10.실무인력 과다 운용
KBS는 지역방송국 폐쇄(7곳), 송신소 무인화(94곳) 등 총 694명의 인력 감축 요인이 발생했는데도 정원 감축 등 조직 슬림화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KBS는 전남 여수 등 7개 지역국을 폐지하고도 196명의 인력을 감축하지 않고 인근 총국과 지방국에 재배치했다.
또 송신·중계소 94곳에 대한 자동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철수되는 인력 499명을 줄이지 않고 시설유지 인력으로 재배치했다.
결국 정 사장은 자신의 주도로 ‘KBS 경영혁신·실천계획’(2005년 12월), ‘지역방송국 경쟁력 강화 방안’(2006년 4월) 등의 경영혁신 계획을 마련했지만 이 계획에 따라 2010년까지 인력을 전체의 15%(813명에 해당), 인건비 비중을 전체 예산의 36%에서 30%로 6%포인트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11.원칙 없는 특별 승격
정 사장은 취임 후 세대교체라는 명분으로 근무 성적이나 공적과 상관없이 일반 승격 요건(1직급에서 3년 이상 부장 경력자) 미달자 20명을 국장으로 특별 승격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3년간 근무평가 서열을 분석한 결과 분석 대상자 182명 중 근무평가 서열이 179위인 인사 등 하위 20% 이내인 사람이 5명이었다.
1996년부터 정 사장 취임 직전인 2003년 4월까지 특별 승격자는 총 6명에 불과했다.
12.보직 근거 미비
KBS는 팀제 개편 후 팀장에 대한 보직 및 보직해임에 대한 최소한의 요건을 마련하지 않아 2005년부터 2008년 6월까지 근무평가 서열이 하위 20%인 인사 12명을 팀장으로 보직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08년 5월까지 팀장 11명을 분위기 쇄신 등 불분명한 사유로 보직 해임하는 등 정 사장이 인사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13.중계소 신설사업 부당 추진
KBS는 난시청 해소 등을 이유로 2005년 10월 총 111억 원을 들여 동두천 중계소에 설치된 아날로그TV 중계기를 감악산 정상 부근으로 옮기고 동두천 등 5곳의 중계소를 없애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결정 과정을 무력화시키는 등 부당하게 업무를 추진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KBS는 이 사업을 위해 필요한 별도의 무선국 허가를 얻지 못한 채 이사회에는 “무선국 허가를 얻은 뒤 관련 건축 행위를 한다”고 보고했고 뒤늦게 정 사장이 2007년 4월 15일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나 무선국 허가를 내 줄 것을 요청했다.
KBS는 같은 해 당시 서울체신청으로부터 2007년 10월 말까지 무선국을 준공하고 혼선 발생 때 KBS가 책임지고 해소하는 조건으로 무선국 변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감사원의 현장 확인 조사 결과 동두천 중계소 이전 등의 조치로 난시청 문제 해결 가능성이 오히려 없는 것으로 드러나 무선국 변경 허가가 취소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사업비 중 74억 원이 사실상 사장(死藏)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감악산 중계소 신설 사업을 부당하게 처리한 관련자에 대해 KBS 측에 문책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14.징계 내용 임의 변경
KBS 인사규정에 따르면 직원에 대한 징계는 인사위원회에서 의결한 사항을 사장이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 사장 취임 후 인사규정 시행세칙에 ‘징계 양정을 사장이 가감하여 확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2004∼2007년 인사위원회에서 의결한 7건의 징계 양정을 사장이 임의로 가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A 씨는 2004년 6월 법인카드를 향락업소에서 사용한 사실 등이 드러나 같은 해 8월 인사위원회에서 징계를 의결했는데도 정 사장이 불문에 부치기로 해 징계가 감경됐다. A 씨는 같은 해 11월 비슷한 비위 의혹이 재차 적발됐는데도 오히려 2005년 4월 대전방송총국장에 임명됐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정 사장은 2005년 4월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성 사과를 했고 A 씨를 뒤늦게 본부 팀원으로 전보했다.
15.별관 및 연구동 사업 불법 추진
KBS는 별관 용지 등을 개발하는 이른바 C3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민간사업자가 사업비 8068억 원 전액을 부담해 관련 건물을 지으면 향후 40년간 임대 사업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용한 후 KBS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구상됐다.
그러나 감사원은 C3프로젝트가 수도권 내 공공청사의 신·증축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방송사의 업무 및 재원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방송법 등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아 향후 사업이 중단될 경우 주요 사업의 차질과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16.수원센터 파행 운영
감사원은 정 사장 등 경영진이 수원센터 운영에 관한 기본 방침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아 단순히 드라마 녹화만 진행되는 등 운영이 정상화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수원센터 중 ‘드라마제작센터 동(棟)’은 편집 및 더빙 장비를 지난 7년간 설치하지 않거나 철거해 이 중 3262m²가 공실(空室)로 방치되거나 사용 빈도가 저조했다. 또 ‘편의시설 동’ 4287m²는 2005년 1월 방송박물관 설치를 위해 입주 업소 11개를 모두 퇴거시켰으나 계획 취소로 전체가 공실로 방치되고 있다.
17.수도권정비계획법 위반
수원센터 중 ‘제작지원센터 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연수시설 규모를 3000m²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3층 1만2000m² 전체를 무단 용도 변경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2005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그러나 2006년 3월 27일 외형상 합법적 연수시설로 보이기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허용 범위 내로만 연수시설로 용도 변경하라는 정 사장의 지시에 따라 2006년 9월 28일 수원시로부터 2800m²만 용도 변경 허가를 받은 뒤 현재까지 3층 건물 1만2000m² 전체를 연수원으로 불법 사용하고 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18.국내영화 구매 업무 부당 처리
KBS는 2006년 8월 모 영화배급사로부터 추석방송 대비용으로 영화 3편을 구입하는 데 13억 원을 써 적정 구매가보다 5억7000만 원이나 더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그 전인 2005년 12월 2006년 추석방송을 대비해 영화 6편을 이미 구매했으나 이 중 한 편도 방송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영상취재 :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