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장르문학의 ‘서늘한 성찬’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김철곤 외 지음/360쪽·1만1000원·시작

◇나의 식인 룸메이트/이종호 외 지음/456쪽·1만2000원·황금가지

스포츠 잡지 기자로 일하다 납량특집 기획을 떠맡게 된 나. 편집장은 이런 기획이 필요한 건 ‘온난화 때문’이라면서 원고가 괜찮지 않다면 내 자리도 괜찮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술을 마시고 빈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처음 만난다. 괴물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괴물’. 그때부터 ‘먹이와 적정한 환경을 계속 제공해주는 한 괴물은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불평등 계약이 성립된다.

공포와 판타지 등 한국 장르문학의 성찬을 즐길 수 있는 책 두 권이 나왔다. 단편으로 등단하거나 발표할 길이 요원하던 국내 장르문학 작가들의 작품이 최근 활발히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 ‘나의 식인 룸메이트’(한국 공포문학 단편선3)는 표제작 외 9편의 으스스한 단편이 실려 있다. ‘분신사바’ ‘귀신전’ 등을 쓴 이종호 작가를 비롯해 공포소설 창작 집단인 ‘매드클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공포를 유발하는 인자들은 사회문제와 연관되기도 한다.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평소 싫어했던 이들부터 시작해 중국집 배달원, 다방 종업원 등을 차례대로 집으로 불러들여 먹잇감으로 제공하는 나는 괴물이란 초현실적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선 영락없이 ‘연쇄살인범’이다.(‘나의 식인 룸메이트’)

유령공포증, 종말공포증, 고독공포증, 고소공포증…. 마음에 내재된 온갖 공포를 극대화하는 전염병이 도는 사회(‘공포인자’)도 사이코패스가 나타나는 현대 사회의 비정상적인 일면을 보는 듯하다. ‘은혜’에서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교묘하게 죽이는 엽기적인 20대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은 환상문학 창작 집단으로 알려진 ‘커그’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작가 9명의 단편을 모았다. 생명체를 창조하는 연구원과 그가 만든 유사인간의 슬픈 사랑, 우투족 여왕의 사생아로 태어난 왕녀의 모험 등 SF, 판타지 소설뿐 아니라 비 오는 날의 스산한 산장, 여자친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귀신 등 공포 소설 문법을 담은 작품도 담겨 있다.

뱀파이어나 흡혈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뱀파이어들의 정체성 고민과 방황을 다루기도 하고(‘카나리아’) 자신의 피를 팔아 돈을 버는 이들에게 포획당한 흡혈귀 이야기(‘사육’)처럼 공포영화의 주역이어야 할 그를 희생물로 격하시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대도시에서 흡혈귀로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다. 문명이 발달한 지금, 사람을 습격해 피를 빨면 반드시 꼬리가 잡힌다’거나 ‘사회적 기반이 강한 흡혈귀들은 피를 돈을 주고 사먹지만…’처럼 호러와 유머의 조합도 이어진다.

출판물로 접하기 쉽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문학 작가들의 단편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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