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 등 인류 생존 위협 ‘뿌리학문’ 철학이 제몫해야”

  • 입력 2008년 8월 11일 03시 00분


국내 첫 국제철학원 회원 된 이남인 교수

“인문학의 위기는 철학의 위기이다. 철학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뿐 아니라 그 밑바닥 뿌리를 탐구하는 전통적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

국내 학자로는 최초로 프랑스 국제철학원(IIP) 회원으로 최근 선출된 이남인(50·사진) 서울대 교수는 10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시대 철학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37년 파리에서 창설된 국제철학원은 위르겐 하버마스, 카를오토 아펠, 힐러리 퍼트넘 등 유명 철학자 112명이 회원인 세계적 권위의 철학 학술 단체.

이 교수는 1991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에드문트 후설의 본능의 현상학’을 비롯한 다수의 논문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철학원 연례 학회에서 신임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에게 전공인 현상학과 ‘우리 시대의 철학’에 대해 물었다.

―현상학은 어떤 학문인가.

“철학을 정립하되 형이상학적인 사변(思辨)이 아닌 현상에 토대를 두고 이론을 정립하자는 학문이다. 구체적인 현실의 경험을 토대로 철학을 전개하기 때문에 구체성의 철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요즘 현상학계의 최대 이슈는 ‘생활세계’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관악산을 2시간 동안 올라갔다고 할 때 물리학적인 시간 개념은 같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짧게 느껴질 수 있다. 생활세계의 시간 개념이다. 단순히 수치로 판단하는 세계가 아니라 실제 개인이 살면서 느끼는 세계다.”

―지금 현실에서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뿌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의식이 희박해졌다. 철학이 실증과학에 토대를 둬야 한다는 실증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철학은 분과학문들과 대화하면서 발전해야 하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 그 학문들의 전제가 타당한지 따져야 한다. 뿌리가 제대로 서야 (줄기인) 분과학문들이 제대로 설 수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철학의 문제는….

“인류의 존속 문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환경 문제 등 엄청난 시련에 직면해 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모든 철학에 주어진 최대의 과제는 인류를 이 위기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실제 생활에서 사례를 든다면….

“여러 연구들을 보면 많은 현대인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심각하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없다. 개인과 사회, 인류가 모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성찰이 없다. 철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철학은 근원적인 것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어려운 만큼 성취의 기쁨도 크다. 도전해 볼 만한 학문이다. 다방면으로 풍부한 지식을 쌓고 외국어 공부에도 힘쓰길 권한다. 특히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잃지 말고 늘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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