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고미술이나 박물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나만을 위한 소비, 모두를 위한 투자
4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 다산쯔(大山子)에 자리한 관푸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개인 컬렉터. 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저술과 강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그는 1월부터 CCTV에서 고미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백가강단(百家講壇)’을 매주 1회 진행하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컬렉터들이 신분노출을 꺼리는 데 비해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알리고 대중과 교감을 나누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로 유출된 유물을 사들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
“혼자 힘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해마다 이사회에서 모은 기금 중 1억 위안을 해외로 나간 중국 문화재를 사들이는 데 쓴다. 지난해엔 한하이(翰海) 옥션에서 청대 분청자기를 2400만여 달러에 구입했다.”
박물관 운영이든 유물 구입이든 국가 도움 없이 개인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개혁개방을 이룬 지 30년 정도 지나면서 중국엔 부유층이 엄청 늘었다. 그러나 50세 이상의 1세대 부호들은 개인적 소비에 관심이 적다. 사치적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투자 환경도 예전만 못해 대신 문화사업이나 미술품을 사들이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도 그의 업적을 인정해 톈안먼(天安門) 부근의 땅 7000m²를 내주었다. 인터뷰 내내 무표정하던 얼굴이 “내년에 공사를 시작해 3년 후 이전 개관할 예정”이라며 도면을 보여줄 때 활짝 피어났다. 박물관은 시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 사람의 꿈, 만인의 행복
박물관의 주요 컬렉션은 도자기와 가구. 대부분 송∼명청시대 유물이다. 수천 점의 소장품 중엔 고궁박물관 등 외부에 대여할 정도로 알짜배기 유물도 즐비하다. 항저우(杭州)와 샤먼(廈門)에 분관도 열었다(www.guanfumuseum.org.cn).
“나는 사회의 흐름을 좇기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1980, 90년대 중국에 큰 변혁이 있었고, 그 이전엔 문화대혁명이 있었다. 난 문혁을 겪은 세대다. 당시 전통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난 그 속에 좋은 점이 있다고 믿었다. 한 민족에겐 자신의 문화적 지주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책들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올랐다. 인세 수입으로 얻은 돈은 다시 수집에 쏟아 부었다.
“시대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만 해도 아무도 고미술을 주목하지 않아 적은 돈으로 좋은 유물을 살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불가능했다. 유물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도 보람이다.”
고미술에 관심이 쏠리면서 가짜 유물도 나돌았지만 그땐 이미 전문가였기에 실수가 없었다는 것. ‘관푸’란 이름은 도덕경의 문구에서 따왔다. “만물은 동시에 생장하고 근원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순환을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돌고 도는 자연의 이치처럼, 그는 돈도 컬렉션도 사람들과 공유를 위한 순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나는 의지가 굳센 편이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가보지 않고 중도에 그만둔 적은 없다.”
한 컬렉터 덕분에 세상을 떠돌던 숱한 유물이 오래도록 편히 쉴 집을 찾았다. 그리고 어떤 이의 꿈은 만인의 즐거움으로 피어난다.
베이징=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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