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시를 묻다

  • 입력 2008년 8월 14일 02시 54분


■ 계간 시인세계 ‘시인 44명의 한마디’ 가을호 특집

《시란 무엇인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를 무엇이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를 사랑하고 시를 아끼는 이들이라면 실마리라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지 않을까.

20일 발행되는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25호)는 이 궁금증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갈이 될 만하다.

한국 문단을 움직이는, 현재 활동 중인 시인 44명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의 깨달음을 내놓았다.

물론 몇몇 시인은 “시가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숱한 낮밤, 시를 쓰고 찢은 이들에게 묻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못 견뎌서 해보는 거외다.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실컷 울고 싶을 때 그러한 처지에 놓였을 때 그것, 시라는 물건을 몇 줄 적어본답니다요. 병신같이 쭈그리고 앉아 끼적거려 보는 겁니다요, 하하.’(원로시인 김규동)

시는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토해낸다. 그러니 뭐라고 대답해도 좋다. 김종철 시인은 그래서 ‘똥’이라 했다. “미아리 낡은 강의실에서 목월도 말했고 미당도/말했고 김구용도 학생들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며/말했고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동리도 불쑥 한마디/했던 그것! 오늘은 나도 한마디 할란다, 똥이야!”

이는 이근배 시인의 ‘개똥참외론’과도 다르지 않다. “굳이 들이대자면 ‘개똥참외’란 생각이 든다. 누구든 먼저 본 사람이 따먹는다.…개똥참외는 콩밭을 매다가 우연히 눈에 띈다지만 시라는 개똥참외는 어디 가서 찾지? 먼저 따먹은 시인들이 밉다.”

그 때문에 문정희 시인은 “시는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속성 탓에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고 했다. 웬만했으면 박남철 시인은 “손을 턱에다 괴고 사진 찍어서 잡지에 발표해보기”라고 정의했을까.

시인들의 정의는 그들의 시만큼 넓고 깊다.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신달자 시인)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오탁번 시인)라고 했다. ‘전달을 바라면서도 대중성을 경멸하는 아름다운 양면성’(허만하 시인)이며 ‘너무나도 확실한 물증’(이수익 시인)이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하니, “요즈음 시는 내게 어제 심은 작약 다섯 그루”라는 정진규 시인의 말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속엔 긍정과 희망의 햇살 또한 함께 숨쉰다. 허영자 시인이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 하는 것도, ‘빈방에 꽂히는 햇빛’(강은교 시인)이며 ‘삶에 낙관주의를 심어주는 것’(이성부 시인)이라 시를 부르는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결국 시인들에게 시란 자신과 이음동의어였다. “살아 있는 시의 혼을 담아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시인의 몫”(김종해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에게 ‘나 이상도 나 이하도 아닌’(정일근 시인), ‘높이 뜨는 느낌으로 얻는 깨달음과 깨침’(김종길 시인)이었다. 그렇게 시는 ‘내 삶의 단독정부’(천양희 시인)가 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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