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는 스님들이 한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安居) 때면 300여 명이 함께 살아가는 대형 사찰이다.
그는 해인사 주지의 소임에 대해 “층층시하(層層侍下) 시집살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딸린 암자만 30여 개에 이르고 곳곳에 ‘어른 스님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비유한 것.
선각 스님은 “해인사는 다른 총림과 달리 여러 문중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어서 원융(圓融)과 공의(公議)의 살림을 하는 곳”이라며 “(문중들이) 한곳에서 불화 없이 조화를 이뤄왔다는 점에서 종단에 있어 하나의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 “여러 문중 함께 생활 화합의 모델”
구성원이 제 목소리만 높이면 화합이 어려워지고 조직 내 잡음이나 균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조계종, 나아가 전체 불교계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출가한 뒤 강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선방에 들어가 수행 정진해 온 선각 스님은 해인사를 ‘좀 더 치열한 정진의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눈 밝은 도인’이 100년에 한 명만 나와도 사찰로서는 영광인데 해인사는 (현 조계종 법전 종정을 비롯해) 수많은 도인 스님들, 큰스님들이 거쳐 간 곳”이라며 “보여주기 위한 참선을 지양하고 스님들이 내면을 파헤치는, 그러면서 자신을 멸각해가는 진실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수행과 교육의 근본 도량으로 만들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