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스물둘, 5피트 5.5인치(약 166cm)의 키, 짙은 갈색 머리, 마른 편이지만 매력적인 몸매, 재능에 문제없고 춤 솜씨는 최상….’
1951년 영화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 역을 맡길 여배우를 물색하던 미국 영화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유럽의 스카우트 담당자로부터 이런 보고서를 받았다. 오드리 헵번의 프로필이었다.
헵번은 카메라 테스트에서 우아하면서 순수한 공주 역을 말끔하게 소화했다. 와일러는 주저 없이 헵번을 발탁했다. 헵번은 그 뒤로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성공의 뒤안에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영화배우 전기를 전문으로 쓰는 저자는 헵번의 어두웠던 과거까지 치밀하게 추적했다. 1929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헵번은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한 사실에 오랫동안 번민했고,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책은 어려운 시절에도 발레를 포기하지 않던 헵번의 끈기와, 연예계에서 차근차근 성공을 향해 나아간 그의 모습을 연대기 형식으로 쫓는다.
뒷부분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한 헵번의 말년을 다뤘다.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아들에게 들려준 시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헵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네가 더 나이가 들면 두 번째 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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