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1년 한국경제인협회 창립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군사정부는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5월 31일 부정축재자를 구속한 뒤 엄하게 다룰 생각이었다. 혈기왕성한 청년 장교들은 총살시키자고 주장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재계 지도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일본에 머물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까지 귀국시켜 의견을 구했다.

재계 지도자들의 권유에 따라 박 의장은 기업인인 부정축재자 13명을 7월 14일에 모두 석방한다.

풀어주는 대신 두 가지를 요구했다. 공장을 건립해 부정축재를 속죄하고 단체를 만들어 협력하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병철 이정림(대한양회 사장) 설경동(대한산업 사장) 씨 등 기업인은 이튿날 공식모임을 하고 7월 17일 경제재건촉진회라는 단체를 만든다.

이정림 사장이 회장에 선출됐으나 취임을 사양하자 한 달 뒤 이병철 사장에게 인계하자는 절충안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군사정부가 입안 중이던 5개년 경제계획과 관련해 기간산업건설안을 만들고 양회 화학섬유 전기 비료 제철 정유 등 5개 공장을 1차 프로젝트로 정했다.

경제재건촉진회는 문호를 개방하면서 8월 16일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병철 초대 회장을 선출한다. 박정희 의장과 맞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회원들이 판단했기 때문.

경제인들은 군부와의 대화창구를 마련해 우왕좌왕하는 경제정책을 바로 세우고 실추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했다.

여기서 소외된 기업인 80여 명이 같은 해 10월 25일 경제간담회 명목으로 만난 뒤 한국경제협회 창립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준비위원회의 심상준 이도영 정주영 씨는 한국경제인협회 대표단과 10월 31일 회동하고 △서로 대동단결한다 △가칭 한국경제협회 설립준비위원회는 한국경제인협회와 합친다 △양측의 진의를 일간지에 성명문으로 발표하여 사회의 이해를 얻도록 한다는 등에 합의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국내 유일의 대기업집단으로 자리 잡았고 1968년 3월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 개칭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도 한국경제인협회와 같은 8월 16일 설립총회를 가졌다. 1946년의 일이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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