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중남미…아프리카…인도…제3세계 미술과의 만남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서구문화 편식증 씻어줄 ‘제3의 눈’

《한 손을 무릎에 올린 채 어딘가 응시하는 여인. 그 앞에 옥수수 가루가 소복이 담긴 질그릇이 놓여 있다. 맨발의 아낙네는 남루하되 초라하지 않다. 화가의 시선이 거리의 행상을 기념비적 형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벽화가이자 프리다 칼로와의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로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의 ‘피놀레 파는 여인’(1924년)이다. 멕시코인이면서도 서양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전통과 민중을 바라보던 리베라는 이 작품을 완성하면서 ‘뿌리’를 자각하는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이 그림이 지구 반대편에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

11월 9일까지 덕수궁미술관(02-2020-0600)에서 열리는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에선 이를 비롯한 중남미 작가 84명의 작품 1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 외에도 아프리카, 인도 등 우리가 접하기 힘들었던 제3세계의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나친 문화 편식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다.

#혼혈문화―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

‘20세기 라틴…’은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 각 나라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중남미의 역사와 정서를 맛보게 한다.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벽화운동’으로 시작된 전시는 ‘우리는 누구인가’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로 이어지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인디오 전통부흥운동, 기하학적 추상,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친다.

“잉카와 마야, 아스텍 같은 훌륭한 문명과 풍부한 자연자원을 물려받은 라틴 아메리카는 오랫동안 식민지로 착취당했고 그 결과 특유의 인종과 문화를 형성한다. 다양한 인종의 혼혈과 문화의 결합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미술작품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기혜경 학예연구사)

전시에선 1920년대 싹튼 멕시코 벽화운동을 이끈 3대 거장인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후 미술의 사회참여와 토착문화에 대한 관심은 중남미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이 밖에 멕시코의 루피노 타마요와 프리다 칼로,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보테로, 쿠바의 위프레도 람, 아르헨티나의 루시오 폰타나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문화융합 아프리카, 인도 미술의 재발견

큰 귀에 볼록 튀어나온 배,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얼굴들. 과감한 원색에 단순화한 형태에서 원시적 생명력과 리듬이 느껴진다.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아프리카 미술관(02-730-2430)에서 열리는 탄자니아의 릴랑가(1934∼2005)의 개인전. 자유로운 삶과 영혼을 표현해온 릴랑가는 서구에 가장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작가 중 한 명이다. 자유로운 삶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미국의 키스 해링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의 신화와 일상을 동화적 심성으로 풀어낸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점이 특징.

세계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한 인도 현대미술의 에너지를 확인하는 전시도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선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인디아바타’전(23일까지, 02-720-5789)과 아라리오 서울의 지티쉬 칼랏 개인전(28일∼9월 24일, 02-723-6190)에선 30대 작가를 조명한다. 인디아바타전의 경우 전통적 문신을 한 아기와 햄버거가 공존하는 진탄 우파디 등 네 작가를 통해 인도의 오늘을 읽어낸다. 독특한 문화융합 방식으로 신화적 상상력과 일상의 거리를 좁힌 작품들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중남미, 아프리카, 인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 빛나는 문명의 발상지였으나 식민지 지배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다. 이들 전시를 돌아보면 우리 역시 유사한 체험을 가졌음에도 그들의 미술을 차별적 시선으로 낮춰본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이 든다.

굴곡진 역사를 거치면서 이 지역의 미술에는 갈등과 상처, 치유 과정이 독특한 조형언어 속에 녹아들어 간다. 그 결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제3세계 미술의 풍요로움과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새롭게 눈뜨게 된다. 서구 미술과 고유한 전통 간의 충돌과 조화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고군분투 여정. 그 속에서 어쩌면 ‘우리’가 나아갈 길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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