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사전교육… 난간-문살 틈은 붓으로
16일 오전 10시경.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정문 돈화문, 중심 건물 인정전, 후원의 시원한 소나무 길을 차례로 지난 관람객들이 생경한 광경에 놀랐다.
관람 금지 구역인 부용지 뒤편 목조건축물인 주합루(宙合樓) 안을 돌아다니는 이들을 본 것이다. 정조가 직접 현판을 쓴 이 건물의 1층에는 규장각이 있었다.
전통문화 보존 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자원봉사자 30여 명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모자와 마스크 앞치마를 갖추고 총채 방비 싸리비를 들고 고궁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창덕궁 주합루와 연경당, 종묘의 건축물과 길을 청소하는 ‘고궁 청소’ 자원봉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 2003년 시작 당시 193명에 불과했던 참가자 수가 4년 만인 지난해 760명으로 4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효성 이건산업 남양유업 한솔그룹 등 기업 차원의 참가도 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20대 대학생을 중심으로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온 40대 주부, 대학생 딸과 함께 온 50대 주부, 30대 직장인, 친구와 함께 온 여중생들까지 다양했다.
박형준(26·서울시립대 4년) 씨가 총채로 대들보를 털어내자 묵은 먼지가 수북이 떨어졌다. 오래된 먼지의 매캐한 냄새가 목을 따갑게 한다. 거미줄을 제거하는 박 씨의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천장의 빛바랜 단청이 총채질에 훼손돼선 안 되기 때문.
궁궐 청소는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 아름지기가 마련한 ‘궁궐 청소 매뉴얼’로 별도의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난간과 문살 틈마다 숨은 먼지를 제거하는 것. 매뉴얼에 따르면 일반 총채 사용은 금지다. 난간 단청과 문살 창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솔이 촘촘하면서도 부드러운 일명 ‘ㄱ자형 붓’이라 불리는 미술용 붓을 준비했다. 문살 하나하나 신중하게 먼지를 제거하는 김승룡(26·연세대 4년) 씨의 손놀림이 세심했다.
엄마와 함께 온 구본희(8·이대부속초교 1년) 군과 친구 구지수(8·이대부속초교 1년) 군은 내내 신났다. 난간부터 마루, 천장 청소를 한 뒤 “매달 오겠다”고 큰소리친다.
이건산업 기획실 계장 심원보(31) 씨는 “일반인들은 가까이 오기도 힘든 문화유산의 기둥, 보를 직접 만져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