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3년 대입 수능 첫 실시

  • 입력 2008년 8월 20일 02시 59분


베이징 올림픽이 어느덧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선수단이 연일 전해오는 승전보에 8월의 무더위와 일상의 피로를 잊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기에 국민은 한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11월 13일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들이다. 스포츠 TV 중계를 보고 싶은 유혹을 참고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수험생의 고충은 짐작할 만하다.

교과지식 중심으로 실력을 평가하던 대입 학력고사가 1993년 고등 사고능력 측정에 역점을 두고 통합교과 출제 형식의 현행 수능으로 전환한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1993년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20일 첫 수능이 실시됐다.

고교 정상화의 기치 아래 기대와 우려 속에 치러진 첫 수능이었던 만큼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산중 교사들은 시험 전날 ‘매미 사냥’을 벌였다. 처음 실시되는 듣기평가 시험 시간에 혹시 매미가 울어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다른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의 학부모도 교육부에 전화를 걸어 매미 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다행히 시험 당일 외국어 듣기평가 시간에 보슬비가 내리면서 매미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그쳐 항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어 듣기평가 문제를 녹음하는 데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교육부는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며 강의 중인 외국인 남성과 10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여성을 녹음자로 선정했다. 그런데 보안 유지 때문에 출제기간 동안 연금을 당한다는 말에 이들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 교육부가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수능 첫해에는 8월과 11월 두 차례 시험을 실시한 까닭에 시험장 주변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8월 시험 때는 새벽부터 시험장 앞에 격문을 붙이고 따뜻한 차를 나눠주며 구호를 외치던 수험생 후배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1차 수능은 쉽게 출제됐으나 3개월 뒤 치러진 2차 수능은 어렵게 출제됐다. 난이도가 일정하지 않고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 해 2회 수능’이 위기에 처했다.

논란 끝에 다음해 2월 교육부는 수능을 1년에 한 차례만 실시하기로 하고 시험일도 11월로 옮겼다. 이에 따라 수능 시험장 앞 풍경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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