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책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는 잘 몰라요. 역경 속에서 책은 한 줄기 빛이요, 고통을 이기는 근간이었습니다. 고백에 가까운 글이지만 읽는 이들이 다시금 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환갑도 지났다. 신께 귀의한 몸이니 마음도 평온할 터. 하지만 당당한 풍채와 달리 그는 조바심이 가득하다. “한 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대표인 김수연(63) 한길교회 담임목사는 언제나 지나온 일보다 앞으로 갈 길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
김 목사가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을 펴냈다. ‘내 생애 단 한 번의 약속’(문이당). 본보와 네이버, ‘작은 도서관…’이 함께하는 연중기획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을 이끄는 그가 무슨 하고픈 말이 그리 많았을까.
○ “시골 아이들 문화적 소외감 극에 달해”
“시골 학교에 도서관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21세기는 절대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의 시대예요. 요즘은 농촌도 먹을 게 없어 굶진 않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소외감은 극에 달했어요. 책만 충분히 제공해도 이를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론 그 간극을 메울 수가 없어요.”
‘내 생애…’에는 이를 위한 김 목사의 20여 년 노력이 빼곡히 담겨 있다. 1991년 7월 지리산 뱀사골 입구 벽촌에서 시작한 학교마을도서관은 이제 전국 130개 등불(13일 경남 창녕군 계창초등학교 개관 포함)을 밝혔다. 주위의 이해가 부족했지만 사재를 털어가며 바친 땀과 눈물이 책 속에는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힘들 때도 많습니다. 포기하고픈 생각이 든 적도 있죠. 하지만 도서관을 지을 때마다 마주치는 시골 아이들의 눈망울, 주민들의 기쁨을 떠올리며 다시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 지키고픈 ‘내 생애 단 한 번의 약속’을 떠올립니다.”
그 약속이란 김 목사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컫는다. 1984년 일곱 살 나이로 혼자 집에 있다 화마(火魔)로 추락해 숨진 둘째 아들…. 사고 나기 며칠 전, 하얀 천사가 날갯짓하는 꿈을 꿨다는 아이를 다독이며 “읽고 싶은 책 실컷 사 주겠다”던 약속. ‘세상을 향해 책 한 권을 나누는 것. 그것은 하늘로 떠나보낸 아이와의 굳은 약속이었다.’(34쪽)
○ “학교마을도서관 130개… 아직 멀었죠”
이제는 그 약속, 웬만큼 지킨 게 아닐까. 하지만 김 목사는 “아직도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소득은 높아졌을지언정 물질에 대한 탐욕은 갈수록 커지는 세상. 김 목사는 책은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신이 주신 길이라 믿는다. 길을 찾았으니 중도에 멈출 수는 없다.
‘세상사 모든 일이 이와 같지 않을까. 옳은 일이라는 자신이 섰다면,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발견했다면 앞뒤 가리지 말고 시작부터 하고 볼 일이다. 시작을 하면 길이 보인다. 기준점이 생기면 가야 할 방향이 보이고 다음 고지가 정해진다.’(229쪽)
길은 지금도 묵묵히 계속된다. ‘내 생애…’는 그 걸음이 문신처럼 새겨진 찬연한 여행기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