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휘몰아치던 11월 어느 밤 배 한 척이 난파된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여자아이는 ‘황금태양’이란 주막을 운영하는 마르탱과 클레망스 부부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부부는 가여운 아이를 친딸처럼 키우고 발견 당시 머리에 두르고 있던 붉은 터번에서 착안해 ‘가랑스’란 이름을 붙여준다. 피부색이 짙은 그 아이는 사라센(아라비아인)에게 잡혀온 노예였다.
가랑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지만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나고 황금태양 주막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바스티엥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삶이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법. 우연히 가랑스를 발견한 영주는 그를 차지하기 위해 횡포를 부린다. 16∼17세기경 내란에 휩싸였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이제 영주를 피해 도망치는 두 사람의 도주와 추격, 은신과 투쟁으로 뻗어 나간다. 가랑스는 숨어 지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 종교전쟁 등 역사적 사건이 개입된다. 저자는 평범한 여인을 통해 역사 속에 녹아든 인간의 삶, 운명에 맞서 전진하는 힘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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